등록 : 2005.04.10 20:25
수정 : 2005.04.10 20:25
도쿄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모습이었다. 기온이 낮은데다 바람마저 불고 있어 풍경은 자못 음산한 느낌조차 주었다. 4월의 첫째 주말, 만개한 벚꽃을 기대했던 여행자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긴 한국에서도 매화며 산수유를 찾아 나선 봄나들이에서 번번이 허탕을 치고 온 터였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2005년의 봄은 더디었다. 대한해협을 짓누르고 있는 모종의 냉기가 봄의 도착을 마냥 늦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거리에는 ‘욘사마’ 광고 포스터가 나붙어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또다른 한류 스타들이 일본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고 있었다. 한국어를 주고받는 일행을 향해 행인들은 호감 섞인 시선을 보내 주었다. 주택가 골목에서 마주친 아이들은 또렷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외치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공산당사 건물에 늘어뜨려진 ‘평화헌법 수호’ 플래카드를 제하고는, 현안인 독도 문제나 역사 왜곡의 파장은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다.
일요일 아침 호텔 방문 손잡이에는 영어판 현지 신문이 담긴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교황의 서거를 하루 앞둔 무렵이었음에도, 이 20면짜리 신문은 광고 없이 2개 면 거의 전부를 소설가 무라카미 류 인터뷰에 할애하고 있었다. 그의 신작 <반도를 나가라>의 출간을 계기로 삼은 것이었다.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일본 서남부 도시 후쿠오카에 상륙해 시민들을 인질로 삼는 2010년의 상황을 가상한 일종의 ‘미래소설’이라 했다. 하필 이 시점에서 일본의 인기 작가가 한반도 북쪽과 일본 사이의 무력충돌을 소재로 삼은 소설을 발표했다는 게 께름칙했다. 결국 일단의 비행 소년들이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을 사살하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된다는 것이 소설의 결말이라 했다. 작가의 이런 상황 설정과 결말 처리는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전쟁 포기를 선언한) 헌법 제9조에 개의치 말고 우리 역시 자위를 위해 무장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었다. 섬뜩했다.
답답한 마음에 책을 꺼내 들었다. 여행길의 동반자로 들고 온 책은 일본 문학평론가 가와무라 미나토 교수(호세이대)의 저서 <전후문학을 묻는다>였다. 가와무라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1995년 한-일 작가회담이 열린 시마네현 마쓰에에서였다. 얼마 전 ‘다케시마의 날’ 제정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곳 말이다. 책은 1945년부터 90년대 전반까지 반세기 가까운 일본 현대문학사를 10개의 주제를 통해 들여다본 일종의 개론서였다. 개론서라고는 해도 딱딱하지 않고 에세이풍의 평이하고 자유로운 글이어서 읽기에 편했다. 무엇보다 가와무라 교수의 논점이 흥미로웠다.
“이 나라에는 아직도 ‘전후’가 끝나는 걸 허락하지 않는 ‘망령’들이 많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는 썼다. 그 망령의 하나로서 그가 조선인 군대위안부를 들고 있는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현대의 ‘새로운 문학’이 ‘고립’되어 있는 것은, 아시아 혹은 국제사회의 현실로부터의 고립이며, 이것은 전쟁의 ‘망령’을 성불(成佛)시키지 못한 일본의 ‘전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가와무라 교수의 결론은 자못 감동적이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근린 아시아의 ‘망령’들의 혼의 행방에도 우리가 관심을 둘 때, 비로소 일본은 ‘전후’를 끝낼 수 있게 되는 것이며, ‘전후문학’은 그 종언을 맞이하고 일본의 ‘새로운 문학’이 출발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지영씨와 더불어 다음달부터 <한겨레>에 합동 소설을 연재하기로 한 일본 작가 쓰지 히토나리의 시도를 주목해 보게 된다. 독도 문제 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달 하순 그는 기자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썼다. “한국 독자에게 진정으로 우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 어떠한 역풍에도 지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며 진정한 우호를 위한 첫발이 될 그런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연재를 통해 제 나름대로 역사를 새로이 배우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류와 쓰지 히토나리. 어느 쪽이 ‘새로운 문학’인 것일까.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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