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0 20:22
수정 : 2005.04.10 20:22
나는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도서실에서 학부모 사서일로 봉사를 한다. 그렇게 시작한지 벌써 5년째로 접어들었다. 담당하는 요일에 낮 12시가 되기도 전에 학교에 가보면 아이들이 빌린 책을 들고 잠겨진 도서실 문 앞에서 아우성거리며 사서어머니들을 기다린다.
아이들이 도서실에서 가장 잘 찾는 책은 재미있고 쉽게 읽혀지는 만화책이다. 요즘은 구입한지 얼마 안된 과학상식 만화책을 읽느라 도서실이 분주하다. 아이들이 그 만화책만 찾아 아예 그 책은 빌려주지 않고 열람만 할 수 있게 했더니 이젠 방과 후까지 남아서 독서에 열중이다.
그런데 요즘 서울시 교육청이 지난 달(22일)에 펴낸 ‘교과별 독서지도 매뉴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란에 대해 학부모로서 나도 한 마디 하고 싶어졌다. 독서를 통해 우리 사람이 얻고자 하는 것은 알고 있는 그대로 마음의 양식이다.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한 사람이 되듯이 책을 통해 우리는 건강한 정신을 얻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아직 말도 하기 전부터, 아니 아이를 임신하고 태동을 느끼면서부터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닐까. 책을 통해 사물을 익히고 나와 다른 생활을 이해하고 더불어 창조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시 교육청의 독서지침은 아이들을 또 하나의 획일적인 틀에 갇히게 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언젠가 신문에서 고등학교 학생이 ‘시’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심정을 토로한 글을 읽었다. 자신은 시를 통해 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느낌과 생각을 가졌는데 학교 공부에서는 하나의 답만을 요구해 답답하다는 이야기였다. 그 글을 읽으며 우리나라 국어교육의 문제점을 느꼈는데 이젠 가장 창의적이어야할 독서교육 마저 틀에 갖추어 하나의 답을 요구하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에 너무나 마음이 답답했다. 그리고 그 실효성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지침대로 해야 한다면 입시학원과는 다른 또 다른 학원을 통해서 책을 읽고 요구하는 정답을 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틀에 갇혀 책을 읽은 아이들이 과연 독서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우려한 것과 같이 또 하나의 교과과정의 연장에 머물러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부담만 되는 독서교육이 될 것이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모든 걸 입시위주의 점수로 환산하는 현 교육풍토에서 학부모들은 벌써부터 학원을 알아보고 출판사는 새로운 기획상품으로 독서시장을 달뜨게 할 것이다. 마치 그 책을 안 읽으면 대학도 못 갈 것처럼.
나는 책 읽기는 생활의 일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같은 음식을 먹고도 사람마다 느끼는 맛이 다른 것처럼 책도 아이수준에 맞게 찾아서 읽어야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발하고 다양한 사고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도서실 문을 닫아야할 오후 4시가 가까워져도 아이들이 키들키들 웃으며 책을 읽고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내고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책장을 둘러보며 마지막 책 정리를 한다. 아이들이 잘 가지않는 서가 뒤쪽 여기저기에서 내일 와서 읽으려고 숨겨놓은 책들이 무더기로 나온다. 어쩐지 꽂혀있어야 할 책들이 훨씬 부족해서 이상하다 했지. 책을 읽게 하기 위한 방법은 아주 많지만, 난 단 하나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읽기는 재미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현주/충남 예산읍 신례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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