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08 18:35
수정 : 2005.04.08 18:35
|
김동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
지난 2일 잠실 체육관에서는 큰 축제가 벌어졌다. 당의장 선거에 모인 열린우리당 당원들과 의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우리당은 보스정당, 지역주의 정당의 오랜 악습을 깨고 당원이 직접 공천자를 선정하고 의장을 선출함으로써 우리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것은 이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실천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보니 우리당은 분명히 정당개혁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나 국민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을 들어주거나 희망의 노래를 불러주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순수하게 우리당이 기획·주도하여 입안한 개혁법안이 있었는지, 사회적 의제를 앞서 제기하였는지, 그리고 완수해야 할 개혁 과제를 제시했는지 모르겠다.
‘4대 개혁법안’이라고 소리가 요란했던 입법안 중 3개는 아직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데, 이들 법안 역시 당에서 주도한 법이라기보다는 시민입법에 가깝다. 신행정수도법안처럼 표와 직결된 법안 통과에는 앞장섰는지 모르나, 주택, 조세, 교육, 복지, 노동 등 우리의 시스템 개혁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철학이나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 연구소가 있다는 소문은 있으나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고, 당내에 여러 의원 모임이 있다고 하나 어떤 정책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지 아직은 가시화되지 않았다.
〈논어〉에 “뜻하는 바가 같지 않으면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우리당이 무엇인가 도모하려 모인 집단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무슨 뜻을 갖고서 모였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난해 민주당과 합당론이 제기되자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정권 끝나면 해산될 당”이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는데, 우리당이 ‘뜻’이 아닌 ‘이해’로 모였다는 말일 게다. 물론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당의 당헌이나 강령에서 내세운 ‘깨끗한 정치’, ‘지역주의 극복’은 물론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엄밀히 말해 정치개혁 완수, 혹은 명실상부 전국정당이 되는 것은 ‘뜻’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그런데 최근 흘러나오는 개헌론, 선거법 개정론 등 우리당이 ‘도모’하려는 것들은 여전히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라는 인상을 준다. 칼이 없어서 전투를 못하겠다고 하소연하다가 막상 칼을 집어주니 이제는 왜, 누구와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꼴이다. ‘실용’은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인데도 우리당 지도부는 목표는 제시하지 않은 채 방법과 수단만 자꾸 강조하고 있다.
<소용돌이의 정치>라는 저서로 유명한 그레고리 헨더슨이 평가하였듯이 그간 한국의 정당은 사실상 집권 수단이며 출세를 위한 도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대다수 정치인들은 차기 당선이라는 개인적 이해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사실 지난 한국 정치사는 학생·지식인·민중의 희생으로 굴러왔고, 열정과 비전을 갖고서 세상과 대면하거나 의제를 선도했던 세력은 사실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런 열정을 가졌던 사람들 중 일부가 우리당 의원이 된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여전히 초심을 견지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과연 우리당은 오욕으로 점철된 한국 정당사에 종지부를 찍을 의지가 있는가?
‘민주화’ 구호가 정치경제 질서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동력이 되지 못하고 단지 과거 비주류에 속했던 사람들의 권력 획득을 위한 한 자격증으로 기능한다면 우리는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21세기는 시민운동(NGO)의 시대라고 말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금부터 ‘정당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시민운동은 현대판 의병이라 할 수 있는데, 또다시 배부른 관리들은 도망가고 관군은 사라진 마당에 의병들이 모여서 맨주먹으로 나라를 지키는 꼴을 볼 수는 없다.
이제 꽃 피고 새 우는 4월이 왔다. 눈을 똑바로 뜨고 4월 국회를 지켜보자.
김동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