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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4 18:26 수정 : 2005.04.04 18:26

지난 1993년, 사건이 처음 벌어졌을 때만 해도 그저 조금 불편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이 사건은 지금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20여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엄청난 재앙으로 변해버렸다. 이 모든 일은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군 병사 1명을 납치하면서 시작됐다.

구출작전에 나선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인질을 붙잡고 있는 장소를 기습했다. 작전 과정에서 하마스 무장대원들과 함께 납치됐던 이스라엘군 병사까지 목숨을 잃었다. 사건 발생 직후 이스라엘군은 알람 교차로 부근에 검문소를 설치했다. 처음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검문소를 통과하는 데 약간의 지체만 있었을 뿐 큰 불편이 없었다. 유대 정착민들도 똑같은 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그들까지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빠져나오는 이들은 검문소에서 멈춰설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스라엘 당국이 유대 정착민들을 위한 별도의 도로를 건설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스라엘군은 검문소 외곽지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검문·검색을 대폭 강화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차량은 통행이 금지됐다. 의료진과 취재진이 탄 차량까지도 통행금지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람은 지나다닐 수 있었지만 차량은 전혀 통과가 허용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서히 차를 바꿔타지 않고도 예루살렘에 드나들기 위해 현지에서 차량과 운전기사를 미리 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2000년 말 제2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됐다. 인티파다 발발 직후 이스라엘군이 칼란디아 지역에 새로운 검문소를 설치하면서 이번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자리한) 요르단강 서안지역 라말라 출입에 어려움이 생겼다.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라말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차량과 탑승자 모두 삼엄한 검문·검색을 거쳐야 했다. 차츰 칼란디아 검문소에 차를 세워둔 채 검문소를 통과해 택시를 잡아타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이러는 사이 분리장벽 건설이 시작됐다. 처음엔 어느 누구도 장벽이 세워지면 실제로 거주지가 ‘분리’될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자리예와 예루살렘을 잇는 주요 교차로가 있는 아부 디스에서 분리장벽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라말라-예루살렘 연결도로를 이용하는 이들에겐 그리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설노동자들이 여기저기에 하나둘씩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처음엔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장벽의 숫자는 적었고, 장벽과 장벽 사이의 거리도 멀었다. 이전에 설치됐던 검문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외곽도로를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올가미는 죄어져 왔고, 언제부턴가 사람들도 이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언젠가 해질 무렵 예루살렘에서 차를 몰아 라말라로 향하던 날을 기억한다. 다히야드 알바리드 부근 어디선가 분리장벽 부근으로 접근하려는데 주변이 한순간에 캄캄해졌다. 장벽이 문자 그대로 햇빛을 차단해버린 것이다. 잔인한 장벽이 만들어 낸 어둠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나쁜 소식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얼마 전 한 군부 소식통의 말을 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라말라나 베들레헴에 가려면 앞으로 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보도가 나온 직후만 해도 이를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부에선 뜬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보도내용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이 전하는 나쁜 소식은 계속됐다. 지난 3월 중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예루살렘 옛시가지 기독교도 구역의 주요 부동산이 유대인 투자자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동산을 매입한 유대인이 이를 예루살렘 옛시가지를 서서히 장악해 가고 있는 극렬 유대 정착민들에게 다시 팔아넘길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마치 위에 언급한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이스라엘 당국은 최근 동예루살렘의 말레 아두밈 지역에서 대규모 정착촌 확장 공사를 벌이겠다는 발표를 내놨다. 3500여명의 유대 정착민만을 위한 주택단지 건설을 위해 이스라엘군 당국이 토지 수용에 나서면서, 이 일대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더이상 자기 땅을 밟을 수 없게 됐다.

‘인도적 재난’이라는 말을 빼고는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벌어져온 일들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들이 그나마 남아있는 것이라도 지켜낼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진지하고 효과적인 전략을 내놔야 한다. 지난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이어져 온 비극을 견뎌내 온 이들이 계속해서 힘차고 단호하게 맞설 수 있도록 말이다.

다우드 쿠탑/팔레스타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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