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04 18:23
수정 : 2005.04.04 18:23
꽃의 계절 4월, 화려한 벚꽃은 멀리 제주도부터 서울의 여의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누비고 올라온다. 벚꽃은 이처럼 봄을 알리는 대명사처럼 우리에게 친숙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엉큼한 속내를 다시 확인하게 된 올해는 벚꽃의 느낌이 새롭다. 벚꽃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며 그들의 역사와 문화 속에 너무 깊이 간직되어 있는 어디까지나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거의 동시에 피었다가 일제히 져 버리는 특징 역시 가미가제식 폭격의 섬뜩함이 연상됨은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선조들은 지금처럼 벚꽃을 감상하였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자두와 복숭아, 매화꽃은 시와 노래로 즐겨 읊었지만 벚나무는 꽃이 아니라 껍질을 벗겨 활의 재료로 사용하였을 뿐이다. 옛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던 벚꽃을 즐기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하나미(花見)’라 불리는 그들의 문화가 전해지면서부터다. 1906년경 진해와 마산 지방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심기 시작하여, 저들의 대륙침략 전진기지로 진해를 군항으로 개발하면서 집집마다 거리마다 벚나무로 단장하였다. 한일병탄이후 한반도로 떼거리로 이주해 오는 길을 따라 그들이 좋아하는 벚꽃은 방방곳곳에 차츰 자리 차지했다. 급기야 남의 나라 왕궁인 창경궁에다 동물원을 만들고 벚나무를 줄줄이 심어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려 한 것이다. 해방 후 반일투사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시절 한때 벚나무를 베어내는 일까지 있었으나 군사정권을 거치는 동안 오히려 장려하는 꽃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근거로 벚나무를 무궁화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가꾸고 있는가? 이는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 한라산이라서 우리의 꽃이므로 일본 꽃으로 알고 경원시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논리 때문이다. 하지만 원산지란 식물학적으로 값어치는 클지라도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의미를 부여할 당위성을 찾기는 어렵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우리나라가 아니지만 국화로 선정된 것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벚나무의 종류는 왕벚나무, 벚나무, 산벚나무, 올벚나무, 개벚나무, 섬벚나무, 꽃벚나무 등 20여 종류에 이른다. 그러나 생김새가 비슷비슷하여 좀처럼 구별할 수 없다. 이들은 너무 닮아서 오랫동안 식물분류학을 공부한 전문가도 헷갈린다. 따라서 우리나라 원산인 제주도 왕벚나무만을 골라 심어도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냥 일본의 '사쿠라‘로 보일 따름이다. 결국 온 나라를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벚꽃 천지로 만들어주는 셈이다. 구차한 원산지 논리로 벚나무 심기를 고집하지 않아도 우리 땅에는 아름다운 꽃나무가 얼마든지 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미선나무를 비롯하여 이팝나무, 노각나무, 개살구나무, 야광나무 등은 결코 벚나무에 뒤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개발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심는 가로수의 대부분은 제주도 원산이라는 왕벚나무다. 이렇게 가다 보면 우리나라는 오래지 않아 온통 벚나무 천지가 되기 십상이다. 오늘날 벚꽃에 길들여진 우리의 눈으로 보아 꽃이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의 현대사를 망쳐놓고 조금도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대표 꽃, 벚나무 심기를 계속하여 할지 깊이 생각해야 보아야 할 과제이다. 더욱이 우리 문화가 서려 있는 천년고도 경주, 유명사찰 등 전통 문화유적지까지 벚나무로 뒤덮은 것은 당장이라도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박상진/경북대 임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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