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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31 20:38 수정 : 2005.03.31 20:38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독서지도자료’라는 이름으로 각급 학교와 학년별로 자료집을 편찬하였다. 이 자료집을 통해 교육청은 정규 교과과정과 접목한 학습도서와 권장도서를 학년별로 또 교과별로 선정하였으며, 구체적인 지도 방법, 평가 방법까지 제시함으로써 독서교육에 관한 의욕적인 기획을 선보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서울시교육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부산을 비롯한 지방 교육청은 물론이거니와 교육인적자원부까지 나서서 독서 이력철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여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교육을 빌미로 책을 읽히고자 하는 시도는 그저 기특한 발상이라고 보아 넘길 일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도의 문화적인 활동이다. 책 자체가 문화의 집약적 표현이기도 하거니와 문자를 통해 의미를 파악하고 스스로의 관점을 세워나가는 일은 문화를 전승하고 창조하기 위한 지극히 인간적인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화적 실천이 자발성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함은 절대적인 원칙이다. 그런데도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교육청이 강제를 동원하여 책을 읽히고 또 나아가 그것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명백히 반문화적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우선 교육청이 실시하고자 하는 독서교육은 독자의 책을 읽지 않을 권리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그것이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일지라도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더러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이라고 우길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존재하는 교육과정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장 내밀하고 창조적이어야 할 책 읽기조차 무차별적으로 강제된다면, 이는 소가 웃고 지나갈 일이다. 정작 교육이 해야 할 일은 학생들에게서 책을 읽지 않을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일이어야 한다.

또한 제시된 독서 지도 자료는 명백히 읽고 싶을 책을 읽을 독자의 또 다른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좋은 책이 누구에게나 좋은 책일 수는 없다. 학생들은 저마다 취향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며, 관심이 다르다. 물론 읽고 싶은 책들도 다르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런데도 일률적으로 몇 권의 학습도서를 선정하고, 그것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읽고 싶은 책조차 읽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더욱이 모든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같은 책을 선정하여 읽도록 만드는 것은 출판의 다양성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왜곡된 구조를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 생물종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듯, 다양한 책들이 다양한 독자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야 문화적 역량이 증대될 것이다.

이에 덧붙여 독서 지도 자료는 책을 읽고 난 다음의 활동까지도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읽은 내용을 측정하는 독서인증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다음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을 권리가 독자들에게는 있다. 다양한 독후 활동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읽고 난 책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을 자유가 독자에게는 보장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나서 또 읽는 중에도 이어질 활동을 염려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책 읽기의 즐거움을 차단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쩌면 좋은 책을 읽고 난 다음 묵묵히 눈을 감고 한 소끔쯤 느낌을 가라앉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독후 활동일 것이다.

이들 문제점을 생각할 때, 서울시 교육청은 지금부터라도 독서교육을 진작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을 깨끗이 포기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차제에 독서인증제를 비롯하여 독서교육이란 이름 아래, 사교육 시장을 파고들어 상업적인 이익을 취하기에 여념이 없는 이름뿐인 독서 운동 단체들은 참으로 아이들을 위하고, 책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깊이 자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독서는 즐겁고 또 즐거운 문화적 실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상욱/춘천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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