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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9 18:42 수정 : 2005.03.29 18:42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見蚊拔劍) ‘닭 잡는 데 어찌 소 칼을 쓰리오.’(割鷄焉用牛刀) 둘 다 보잘것없는 일에 지나치게 대응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모기를 잡는 데는 파리채가 제격이고, 닭을 잡는 데는 작은 칼이면 충분하다.

일부 스포츠계가 최근의 독도 문제와 관련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걱정과 우려가 앞선다.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런 대응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축구연맹(회장 변석화)은 20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27일 의정부종합경기장에서 열기로 했던 제2회 덴소컵 대학 한-일 정기전을 갑자기 취소했다. “독도 문제로 온나라가 들끓고 있는 마당에 무슨 축구경기냐”고 대학 이사장들이 취소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단다. 이때 한국의 대학선수들은 남해에서 전지훈련 중이었다. 일본 선수들도 터키까지 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축구연맹은 이미 대회를 알리는 펼침막과 홍보물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연맹은 상당한 금전적인 손실을 봤다. 더욱 큰 손실은 대회를 준비하던 학생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였다. 연맹 관계자는 “어린 학생들이 무슨 죄냐! 일부 정치인들의 행동 때문에 애먼 학생들만 가슴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용인과 제주에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는 레이크힐스 골프 앤 리조트는 17일 골프장 입구에 ‘일본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세웠다. “독도 사태와 관련해 일본이 자숙할 때까지 매출에 타격이 있더라도 일본인 출입을 금지키로 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도 뿌렸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26일의 사우디아라비아와 독일 월드컵 예선전에 앞서 벌인 21일 브르키나파소와의 평가전에서 독도를 주제로 한 집단 골 뒤풀이를 벌였다. 선수들은 이날 김상식 선수가 골을 성공시키자 모두 경기장 옆의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인 케이티(KT) 광고판으로 몰려가 이를 이용한 자세를 취했다. 이를 두고 ‘통쾌하다’ ‘의미있다’는 보도와 논평이 잇따랐다.

이 밖에도 독도 문제가 불거진 뒤 한-일 스포츠 교류가 중단된 예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여자농구가 23, 26일 예정대로 서울과 도쿄에서 한-일 여자실업농구 챔피언전을 벌인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스포츠계까지 ‘독도 민족주의’의 파고가 높게 일고 있는 것은 영토 분쟁의 폭발성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여기에는 애국심을 이용한 장삿속도 한몫을 거들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잠깐 머리를 식히고 냉철하게 생각해 보자.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 북한과의 관계가 나빠질 때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 학생의 치마저고리에 칼질을 해대는 데 크게 분노했다. 1998년 8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때도 그랬고,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북한 방문 이후 터진 ‘납치 광풍’ 때도 그랬다. “왜 일본 사람들은 아무 관계도 없는 재일동포 학생들을 헤코지하느냐”며.

또 한국 사람들은 납치 일본인 ‘가짜 유골’ 문제로 일본 안의 반북 분위기가 기승을 부리던 2월9일 사이타마경기장에서 열린 북-일 사이 독일월드컵 예선경기가 불상사 없이 끝났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본과 중국의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일본의 대중국 정책에 불만을 품은 중국 관중이 경기장을 반일 시위장으로 만든 것과 비교하면서 일본 관중의 높은 분별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지금 스포츠계가 벌이고 있는 ‘독도 애국주의’는 독도 분쟁과 아무 관계도 없는 많은 일본 사람들에게 당혹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배구에서 상대의 속공을 저지하기 위해 자로 잰 듯한 ‘목적타 서비스’를 넣듯이, 독도 문제도 쓸데없는 역풍을 피하려면 정교한 ‘목적타 공격’이 필요하다. 스포츠 마당마저 ‘독도의 분노’로 채우는 것은,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할 가능성이 높다.

스포츠는 정치와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감동이 더욱 크다.

오태규 사회부장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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