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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9 18:30 수정 : 2005.03.29 18:30

김두식/한동대 교수·변호사

2년 가까이 <한겨레>에 칼럼을 쓰는 동안, 원고 마감 날이면 언제나 ‘이번에는 꼭 북한 인권에 대해 써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 내게는 그만큼 부담스러운 주제였다. 그렇다고 내가 남북 화해와 협력에 혹시 지장을 주게 될까봐 걱정했던 것도, 부시 행정부에 전쟁의 빌미를 제공할까봐 염려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유는 훨씬 단순했다. 글 쓰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사실관계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데다가, 막상 어렵게 글을 완성해도 공자님 말씀처럼 뻔한 이야기라 여러 번을 그냥 지워버려야 했던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끓인 쇳물로 기독교인들을 살해한다는 증언을 오래 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걸 모두 사실로 받아들였다. 전기가 없어서 한밤중에 불도 제대로 못 켜고, 기름이 없어서 전투기 훈련도 못한다는 나라에서 사람 죽이는데 굳이 쇳물까지 끓일 이유가 어디 있었을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권 관련 피해자들의 주장이라면 확실한 반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믿어준다”는 내 나름의 원칙에 충실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 보수적인 북한 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는 믿을만한 분으로부터 탈북자들 중에 사실관계를 과장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자기 몸값을 높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분은 ‘쇳물’ 이야기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 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쇳물’ 이야기는 결국 태평양을 건너갔고, 북한인권법 통과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불확실한 이야기를 섣불리 글로 옮기지 않은 것은 내 입장에서 다행이었지만,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또 다른 탈북자가 생체실험을 증언하거나, 공개처형 장면을 들고 온다면 그걸 믿어야 할까 믿지 말아야 할까. 국제적인 수준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심각한 인권 침해가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북한의 현실 자체를 전혀 의심치 않으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언제까지 글쓰기를 보류해야 할까.

물론 북한 인권 논의가 이렇게 복잡해진 데에는 ‘사실’과 ‘선전선동’을 구분하지 못한 일부 보수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최첨단의 촬영 및 감청 기술을 통해 상당한 정보를 축적하고 있으면서도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탈북자의 입에만 의지하여 대북 강경 노선을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도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진보 진영이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엉터리 보도보다는 차라리 침묵이 낫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폐쇄된 독재 국가의 인권 현실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오류나 과장을 감수하더라도 열심히 보도하는 편이 적어도 침묵보다는 나은 태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지난 10여 년 간 북한 인권에 대해 첩보 비슷한 것이라도 제공해 준 매체가 <월간조선> 류를 빼고 도대체 누가 있었는지를. 보수 언론과 일부 단체의 헛발질에 비웃음을 날리는 것으로 자족해온 진보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이런 식의 직무유기에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사실 확인을 위해 월급을 받는 기자들이, 국내 입국 탈북자 수가 6천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여전히 사실 확인이 어렵다고 발을 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대화 상대방을 고려한 불가피한 침묵도 통일부의 몫이지 기자들의 몫은 아니다.

인권 논의는 무엇보다 객관적 사실의 확인에서 출발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사안별로 신뢰할만한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는 이 때,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들도 적극적인 취재를 통해 북한 시민들과 탈북자들의 인권 실태를 파악하고, 기본권의 신장이 북한 정권과 시민들 모두에게 유익함을 알려야 한다. 원래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 아니던가.

김두식/한동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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