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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4 19:25 수정 : 2005.03.24 19:25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님께! 지난 월요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벌어진 중학생 단체관객들의 난동을 지켜보며 당시 참담했던 심정을 글로 올립니다.

그날 오후 2시에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독일 오페라 <마탄의 사수> 국내 초연을 하루 앞두고 리허설을 겸한 예비공연이 있었습니다. 서울 강남구의 ㄱ중학교와 송파구의 ㅁ중학교를 비롯한 서울의 7~8개 중학교 1~3학년생 1800여명과 담임교사들이 오페라를 단체관람하러 왔더군요. 어느 ‘청소년 문화탐험 운동단체’가 무용이나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의 본공연에 앞서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저렴하게 공연을 체험할 기회를 주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평소 공부에 치여 지내는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 공연을 보여줘 그들의 눈과 귀를 틔워주고 공연예절도 익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어린 중학생들에게 오페라는 좀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만 <마탄의 사수>가 독일의 초등학생도 즐겨 보는 독일의 ‘국민 오페라’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는데도 학생들이 모두 입장을 하지 않는데다 자리를 마구 옮겨 다니고 떠들어 20여분이 지나도록 막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한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조용히 해줄 것을 당부하셨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국립오페라단 무대감독이 마이크로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고를 수 없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두 차례나 한 뒤에야 가까스로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온갖 소음이 난무했습니다. 의자 삐걱대는 소리, 과자봉지 부스럭대는 소리, 빈 깡통 굴러가는 소리, 동전 짤랑거리는 소리…. 오페라극장 진행요원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학생들은 쉴 새 없이 떠들고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데 열중했으며, 심지어 이층에서 아래층으로 침을 뱉고 무엇인가를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날 저는 우연히 독일인 연출가 볼프람 메링과 가까이 앉아서 그를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몹시 난감해하는 표정을 곁눈질로 보았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분노를 넘어 절망할 정도였는데 리허설을 망쳐버린 그의 허탈감은 어떠하였을까요. 공연이 끝난 뒤 그가 “정신없었다. 조금 심한 것 같다”고 털어놓았고, 성악가들도 “공연에 집중이 안 돼 애를 먹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또 학생들은 막간휴식 시간에 한꺼번에 매점으로 몰려가 빵을 훔치고 기물을 훼손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아내와 이 문제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저토록 공연예절에 미숙한 까닭은 입시경쟁에 내몰려 미처 공연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만을 챙기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부추긴 결과가 아닌지 반성도 해보았습니다. 오늘날 심각해지고 있는 청소년 문제의 원인도 바로 그런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심성을 올바르게 가꾸는 일을 학교교육에만 내맡겨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가정에서 학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입니다. 또 아이는 어른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어른들이 앞장서서 질서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연히 아이들도 따라 배우게 되겠지요.

학부모님! 평소 금지옥엽 자녀에게 고액 과외나 명품 선물도 필요하지만 자녀와 함께 공연장을 찾아서 일찍부터 공연예절을 길러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적어도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지난해 어느 연주회장에서 가방 속에 강아지를 몰래 넣고 들어갔다 다른 관객들의 분노를 사자 “내 개는 음악을 알아듣는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는 못난 청년처럼 자라나기를 바라지는 않으시겠지요?

요즘 봄을 맞아 참 수준 높은 공연들이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날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마탄의 사수> 팸플릿에는 ‘공연장 관람예절’이 자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신 뒤 짬을 내어 자녀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아보시는 것이 어떠한지요?

정상영 문화생활부 차장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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