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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3 19:41 수정 : 2005.03.23 19:41

서울 식당에서 먹고 싶은 우리 음식 1인분을 사먹기란 어렵다. 기사식당이나 설렁탕 갈비탕 종류를 파는 곳말고 대부분 식당에서 한식은 2인분 이상만 판다. 저녁 8시 반 이후엔 종업원이 음식 종류를 지정해주는 대로 따르는 게 끼니 거르지 않는 비결이다. 혼자서 방안에 들어가 자리잡을 생각은 않는 게 좋다. 명절 연휴 땐 독신이나 자취생, 홀로 배낭여행이라도 하는 외국인은 미리 빵이나 라면을 사 놓아야 한다.

음식엔 만든 이의 인간성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지방의 여느 식당처럼 5천원 안팎의 음식에 정갈한 반찬이 20가지 정도 나오는 식당을 서울에선 찾기 어렵다. 서소문 쪽 유명한 김치찌개 전문 식당에 갔다가 반찬으로 이미 찌개에 들어간 김치와 콩나물 두 가지만 내놓는 것을 보고 줄서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설탕이 안 들어간 식당 요리를 만나보기도 어렵다. 불고기나 갈비는 설탕 범벅, 김치도 설탕 절임, 동치미도 설탕 국물이다. 끼니를 주로 사먹는 사람들이 모두 당뇨에 걸리지 않는 게 다행이다.

비싼 음식은 어떤가. 삼청동 쪽 고급식당, 강남에서 실내장식 좋기로 이름난 식당의 두당 5만원 안팎짜리 한정식을 어쩌다 얻어먹고 뱃속이 후련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런 음식을 먹은 한두 시간 뒤에는 꼭 라면이라도 다시 먹어야 뱃속의 허전한 구석을 메우는 기분이 들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런 식당의 주인은 “음식은 분위기로 먹는다”는 믿음으로 무장돼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약 없이 가기 어렵다는 광화문 어느 식당에 간 적이 있다. 남도 뻘낙지가 많이 나는 곳 지명을 식당 이름으로 걸고 성업 중이었다. 고향음식 생각도 나고 해서 연포탕을 주문했다. 가득 썰어넣은 호박채 사이사이에 낙지발이 숨어 있었다. 낙지 연포탕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전남 영암 독천 쪽 식당에 호박채 썰어넣은 연포탕은 없다.

서울살이의 고통은 식당 얘기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택시를 타면 기사님께 먼저 인사를 올린다. 인사에 답하는 사람은 반이 안 된다. 선거철엔 택시기사와 ‘토론’을 피하는 게 좋다. 익명 다중의 여론 청취로 단련된 말발이 방송토론 패널감이다. 물론 일부 콜택시와 모범택시, 그리고 일반택시 기사들 가운데 승객을 반겨 맞고, 승객의 주장에 져주고, 짐든 승객을 위해 트렁크문을 직접 열어주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유사 이래 처음으로 솥단지 들고나와 시위하는 이들의 고통을 두고 직업윤리만 말할 수는 없다. 한창 나이에 실직해 사납금 대기에 바쁜 이들에게 ‘서비스!’만을 외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택시와 식당은 서울 같은 대도시 시민들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요소의 하나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최근 주변 관행에 이런 증세가 있다. 어떤 문제를 두고 예 또는 아니오에 대해 확인전화를 주기로 하고, 하지 않는 것이다. 전화가 걸려오지 않으면 약속은 자동 폐기된 것이고, 예 아니오는 아니오라는 뜻이다. 어쨌든 가부간에 전화를 해 주어야 하는 풍습에 젖은 사람들은 기분좋을 리 없다.


나는 지하철 여의나루역에서 신문판촉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아침이 생각났다. 한결같이 굳어있는 서울 사람들과 이방인인 나에게까지 길에서 눈짓으로 아침인사를 하던 오클랜드 시민들. 뉴질랜드에서는 날아가던 청둥오리가 도심의 벤치에 내려앉아 샌드위치 먹는 이에게 다가가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같은 야생조류인데도 우리 서산 간월호에서는 1km 이내 사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우리나라에 굳이 <좋은 나라 운동본부>라는 캠페인성 프로그램이 있다는 게 마땅찮다. 〈!느낌표〉 등 예능 프로그램조차 미담사례로 채우려고 애쓴다. 사회가 총체적인 불신과 해이 속에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구제금융 사태 이후, 그리고 최근의 경제불황으로 세상이 각박해진 정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작지만 각자 맡은바 직분에서 진실로 남을 배려하는 사회기풍을 조성하는 노력이 경기회복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최성민 논설위원 smcho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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