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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2 20:44 수정 : 2005.03.22 20:44

김제완/재외동포신문 편집장

외국에 살다가 한국에 와서 텔레비전을 켜면 이색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음식을 입에 넣는 장면이다. 주로 예쁜 아가씨들이 빨간 입을 벌리고 젓가락이나 수저로 음식을 입에 넣는다. 그리고는 잠시 음미하다가 열에 열은 “아 참 맛있어, 맛이 기가 막히네요”라고 말한다. 이런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맛있는 TV’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다른 나라 텔레비전에서는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먹는 일에 열중하는 걸까. 왜 이렇게 전국민이 식탐에 빠져 있는 걸까.

국외자의 눈에 보이는 현상을 나름대로 분석해봤다. 첫째는 시민들의 가중되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하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느 때는 사막과도 같다. 이런 때에 사람들은 오아시스를 찾는다. 사람의 몸에 있는 오아시스, 무엇일까. 그것은 섹스와 식탐이다. 사람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성욕이나 식욕을 즐기기 위해서 사용할 줄 아는 존재이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도 쾌락을 위해 또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식욕을 이용한다.

남자들이 겪는 군대생활에서도 이에 해당하는 실례를 발견할 수 있다. 군에 입대하면 졸병때는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다. 이때 먹는 것으로 풀려고 한다. 그래서 첫휴가 나온 일등병은 몸이 퉁퉁해져 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부모님들은 배곯지 않고 생활을 잘한 것으로 믿고 대견해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인들은 일등병처럼 쌓이는 스트레스를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직장을 나서면 거리에는 음식점과 술집만이 눈에 띈다. 그래서 먹는 행위로 풀게 된다. 일종의 일등병 증후군이다.

둘째 원인은 더 우려스럽다. 식탐현상이 미국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와서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사회현상을 보면 늘 미국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디서 저런 정체불명의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따져보면 늘 미국이 그 기원이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몸에 나쁜 담배를 철저하게 배격하고 좋은 것만을 취한다. 식당에서 담배도 피울 수가 없어서 뉴욕 동포들은 한국에서 온 손님을 맞이할 때 허드슨강 건너 뉴저지주로 건너간다. 뉴저지는 주법이 달라 식당에서 흡연이 허용돼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인들은 흡연자들을 내쫓고 영양가 있는 식사를 즐긴다. 그 결과가 비만이다. 미국인들 60%가 과체중이며 20%는 심각한 비만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이것이 소위 미국식 합리주의의 결과다. 유럽사람들은 무식하고 미련한 미국인이라고 흉본다. 그런데 한국이 그런 미국을 닮아간다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전국민 먹기대회를 열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런 광기와도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가 않은 것같다. 한국사회의 과도기적인 현상이라는 의미도 숨겨져 있는 것같다.

몇해전 어느 정부 부처의 기관장이 동포들에게 고국의 현실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 기억난다. 지금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시기라고.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데 이제는 나랏님 덕에 굶는 걱정에서 벗어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못먹어 억울했는데 이제는 허리띠 풀고 먹어보자는 것일까. 이런 욕구에 부응하느라 많은 새로운 먹거리가 개발되고 있다. 그동안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던 음식의 위상이 이제는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한단계 높아졌다. 오랜만에 방문한 동포들에게 한국은 먹거리의 천국이다. 이 때문에 유학생이나 해외동포들도 한국에 다녀오면 첫 휴가 나온 병사처럼 몸이 퉁퉁해진다.

외국인이나 재외동포들같은 외부인의 눈에 한국 국민들이 모두 식탐에 빠져있는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러나 한국인들만이 식탐증에 빠져 있는 자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것같다. 이제는 한국사회가 이 광기와도 같은 식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 1위의 40대 사망률의 원인중에서 첫번째가 운동부족과 식생활의 서구화에 따른 복부비만이라는 통계가 나와있다. 비만 미국인들중 수십만명은 스스로 대변을 보고 밑을 닦지 못한다고 한다. 식탐의 미래는 이런 것이다.

김제완/재외동포신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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