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6 19:22
수정 : 2005.03.16 19:22
미혼모 또는 혼전임신을 다룬 드라마가 유행이다. 시각도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부주의와 섣부름을 탓하기는 하지만 범죄 취급하듯 하지는 않는다. 이제 흔한 일이어서 여기까지 왔다기보다는 그만큼 보는 눈이 바뀌었다. 기껏해야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되돌릴 수가 없으니 잘 처리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의 성관계는 모두 그릇된 불장난이나 불륜으로 몰아붙이던 데 비하면 큰 변화다. 완고한 윤리에 대한 실용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실용주의에는 어쩐지 잿빛이 감돈다. 실용주의가 윤리를 완전히 대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실용주의는 유연하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힌다. 이해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국제 정치 영역에서는 특히 그렇다. 나라 사이의 관계에서 윤리를 앞세우면 사태가 더 복잡하고 위험해지기 쉽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은 생생한 본보기를 제공한다. 부시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이라크를 침공하기 오래 전부터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야 할 악’으로 규정했다. 대량살상 무기 개발·보유와 테러 지원은 대외적인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대량살상 무기가 발견되는 쪽이 나았을지 모른다. 그나마 후유증이라도 줄일 수 있으니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무기는 없었고, 테러 지원 주장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부시 행정부는 다른 윤리적인 이유를 내세웠다. ‘후세인의 폭정에서 이라크인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했다가 그것도 먹히지 않자 ‘중동 지역내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판을 키웠다. 이제 미국의 중동 개입은 중세의 십자군 전쟁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성전이 됐다.
윤리적 판단이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북한 핵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가 올해 들어 ‘폭정의 전초기지’로 바꿨다. 북한이 사과를 요구하자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사과한 사례를 알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미국 강경파에게 북한 정권은 여전히 제거해야 할 악이다. 따라서 악이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타협이나 양보는 생각하기 어렵다. 지난달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요구한 ‘적대정책 철회’와 ‘핵 동결 대 보상 원칙 존중’도 그래서 코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라크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악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상대에게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한의 대응은 비슷한 강도의 윤리적 잣대를 미국에 거꾸로 들이대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대로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굴복하느니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불신은 깊어만 간다. 이래서는 교착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한국은 북한 핵 문제의 주요한 당사자이면서도 사실상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북한과 직접 접촉하는 통로가 제한된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북 특사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도 거부할 상황이 아니다.
6자 회담이 진전돼 경협 문제가 논의되면 북한이 결국 기댈 곳은 한국이다. 지금은 중단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도 비용의 대부분을 우리가 댔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도 우리가 하는 것이다. 반면,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다.
북한 핵 문제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되돌릴 수가 없으니 잘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미혼모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 두 남녀를 결혼시키는 것이듯, 북한 핵 문제도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다. 그러려면 기존의 경직된 논의 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도 통상적인 틀을 뛰어넘은 과감한 접근이 있었기에 성사될 수 있었다.
‘역사는 땜쟁이’라고 한다. 항상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탓에 너덜너덜한 흔적이 남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도 좋다. 핵 문제가 풀린다면 그런 흉터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참여정부가 실용주의 정신을 힘있게 발휘해야 할 곳은 국내 정책보다는 북한 핵문제 쪽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