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6 18:47
수정 : 2005.03.16 18:47
2004년 현재 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 461명 가운데 133명은 ‘남편 살해죄’로 수감됐다. 이 교도소에 살인죄로 복역 중인 전체 재소자의 51.4%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런 사실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재임 중 청주여자교도소를 방문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충북대 김영희 교수팀이 연구 용역을 수행하였다. 문제는 이들의 범행이 모두 가정폭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곳의 여성들은 오랜 기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던 피해자였고, 이들의 행위는 살인이 아니라 정당방위였다. 인권 운동 단체인 ‘여성의전화’에는 1983년 창립 이래, 26개에 이르는 전국 지부마다, 매년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된 여성들의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살인자가 아니라 생존자이며 정치범이다. 그것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정치범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양심수’라 부르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석방 운동을 벌이는 세력도 없다. 남성이 남성을 때리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고, 남성이 여성을 때리는 것은 ‘집안 일’인가? 남성 중심의 가족주의로 모든 이들을 통제하는 사회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안식처 가정’, ‘보호자 남성’은 현실이 아니라 신화다. 평화학자 이대훈에 의하면, 1987년 캐나다에서 살해된 여성의 67%가 남편이 범인이었고,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방에서 일어난 전체 살인 사건의 18%가 남편의 아내 살해였다. 전문가들은 이 놀라운 수치마저도 축소 보고된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은 통계조차 없다. 관련 통계들도 성 인지적 시각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진다. 성별에 따라 폭력 허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때리다가 사망하면 ‘과실치사’지만 아내가 저항하다가 남편이 사망하면 ‘살인’이 된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남성의 본능과 전유물로 여겨져서 여성들은 고통이나 폭력을 당했을 때 남성보다 훨씬 더 참을 것이 요구된다. ‘원래’ 공격 성향이 강한 남성의 폭력 행위는 ‘우발적인 것’으로 해석되지만, 여성이 ‘공격’했을 경우에는 미리 계획된, 고의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문화적 고정 관념은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 앞에서도 여성의 저항권을 박탈한다.
현행법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피해의 현재성’과 저항의 ‘상당한 이유’가 충족되어야 한다. 폭력 남편 살해를 정당방위로 보지 않는 것은 피해 여성들이 구타당할 당시에는 극심한 두려움 때문에, 남편이 술에 취했거나 잠들었을 때 ‘범행’(자기 방어)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해의 현재성’은 우연적인 폭력 사건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일상적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 ‘상당한 이유’라는 것도, 대부분의 법 운용자들이 여성이 겪는 폭력의 심각성과 공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의 정당방위를 ‘상당하지 않은 이유’로 판단한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왜 벗어나지 못 하는가?”인데, 이 질문에는 가정에는 강제가 없을 것이라는 남성 중심적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국가폭력, 조직폭력 피해자에게는 이러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첫 폭력의 95%가 신혼 초에 발생하는데, 이는 아내에 대한 폭력이 성격 갈등이 아니라 명백한 통제 행위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는 피해 여성에게 이중 메시지를 보낸다. 초기 폭력에 강하게 대응하면 “참을성이 없다”고 비난하고, 오랜 세월 동안 당하다가 벗어나려 하면, “이제까지 참았는데, 갑자기 이혼하려는 저의가 뭐냐”고 묻는다. 폭력을 견디는 여성은 ‘바보여서’, 저항하는 여성은 ‘여자답지 못해서’ 비난받는다. 한국 사회는 폭력 가정일지라도 남녀가 함께 살면 ‘정상’ 가족이고, 여성이 폭력에서 탈출하면 ‘결손’ 가정으로 간주한다. 폭력으로 인해 가정이 깨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고문과 같은 폭력으로도 남성 중심적 가정이 안 깨지는 것이, 더욱 큰 문제가 아닐까.
정희진/서강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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