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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5 18:59 수정 : 2005.03.15 18:59

딸아이의 눈에 다래끼라 났는데 곪지도 않고 너무 커진 상태로 오래가서 동네에 있는 안과를 찾았다. 마침 내가 간 날이 개원을 한 날이어서 그런지 진행도 좀 어색하고 편의 시설도 엉성했지만 광고는 엄청나게 한 탓에 손님은 줄을 이었다. 40분 정도 기다렸다 만난 의사는 젊고 친절했다. 친절한 의사를 만난다는 건 너무나도 드문 일이긴 하지만 오늘이 개원 첫날이니 친절한 건 당연한 거라 별로 감동하진 않았다. 그리고 양 의사들에겐 정말 미안한 소리지만 그들이 제일 많이 하고 잘 하는 말인 ‘조금 더 지켜봅시다’를 예외 없이 듣는 것도 그저 무덤덤했다. 화장실에 휴지도 없고 기본 30분은 기다리게 하면서 잡지도 한 권 없고 티브이도 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개원을 한 것은 동네사람이니까 하고 이해해줬다. 헌데 지금 짜도 되긴 하는데 눈 다래끼 짜는 기구가 아직 안 들어왔으니까 조금 더 두고 보자고 하는 데서부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받는 나의 짜증은 역사가 참으로 오래됐다. 어렸을 때부터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면서 안 해본 치료가 없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아팠던 십대를 떠올려보면 통증보다 더 싫은 기억은 의사와 간호사들의 불친절과 병원 시스템의 엉성함이었다. 그 후 아버지가 식도암으로 고생을 하셨을 때는 정말이지 한국 병원과 의사들에 대해서 책이라도 쓰던가 전국의 환자들과 연대해서 ‘환자파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없는 거 투성이면서 환자를 받은 거부터 머리에 김이 솔솔 나기 시작한 내게 그 젊은 의사는 기름을 부었다. 짜는 기구가 들어올 때까지 항염 약을 먹고 바르고 넣고 하고 있으라고 권하면서 다른 병원 갈 생각을 안 하는 게 좋다고 하는 거다. 그 이유가 내 성미를 건드렸다. “다른 데 가셔도 아마 아이들 다래끼 수술은 안 하려고들 할 겁니다.” “왜요?” “아이들은 몸부림이 심하니까 번거롭잖아요. 다들 귀찮아서 어린애들은 받기 싫어하거든요.” 그 젊고 친절한 의사는 돈 내고 치료받으러 온 우리 모녀에게 마치 큰 선심이라도 베풀 듯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의사’가 ‘어린 환자’의 눈 다래끼 수술을 그것도 ‘돈을 받고’하는 것인데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아마 다른 환자들은 우리나라 의사들의 그 특유의 기운에 눌려 자신이 그 병원의 ‘고객’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체 머리 조아리며 쩔쩔매고 감사했을 것이다. 사람 잘못 봤지. 뚜껑이 열린 난 최대한 우아하게 쏘아붙였다. “그래서 우리나라 병원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거예요. 의사는 서비스업인데 귀찮다고 서비스를 안 하면 어떡해요? 다섯 살짜리가 생눈을 째는데 몸부림치는 거야 당연하지 그게 귀찮다고 다들 안 해 주면 어린 환자들은 그럼 어딜 가란 말예요?”

사실 이 정도는 여태까지 내가 겪은 의사들의 교만함과 비뚤어진 권위의식과 서비스 정신의 황폐함에 비하면 너무나도 양반이다. 대학병원에서의 회진 풍경을 보라. 담당의사는 신과 동일하다. 의사가 전문직인 동시에 서비스업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절대로 고객인 환자들에게 그렇게 냉대할 수 없는 거다. 병 고치러 갔다가 마음의 병을 더 얻어온다는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리 의사들한테 꼼짝을 못하는 걸까. 하긴 동네 분식점을 가도 주인눈치를 봐가며 밥을 사 먹어야하니 어려운 말만 늘어놓는 그 분들 앞에서야 당연히 쫄 수밖에….

나는 공연할 때마다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 하나하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많은 배우들 중에 날 택해주고 내 연기를 봐주고 돈도 주니까. 그들이 받는 예술의 향응은 당연하고도 남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힘들어 쓰러질 것 같아도 매 공연 최선을 다했다. 문만 열면 있는 게 병원이다. 의사는 기술과 지식을 서비스해주는 사람이고 환자들은 그 서비스를 사주는 고객이다. 손님은 왕이라는 사실을 병원만 모르는 거 같다.

오지혜/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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