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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5 18:42 수정 : 2005.03.15 18:42

‘한-일 우정의 해’에 두 나라 사이에 예기치 않은 균열음이 일고 있다. ‘다케시마의 날’과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뒤에서 대결을 부추기는 일본 우익의 준동 탓이 크다. 불행한 일이다.

전후 일본 자민당의 거물로서 한-일 수교협상의 주역이었던 오히라 마사요시는 “싫다고 이사갈 수 없지 않은가”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사갈 수 없다고 해서 번번이 이웃을 비웃고 이웃의 울타리를 넘보는 짓은 옳지 않다. 21세기 세계사 흐름을 생각할 때 작금의 일본 우익들은 힘센 남자의 환상에 빠져 있는 노인의 심리 상태와 비슷해 보인다. 이것은 ‘문명국’ 일본의 불행에만 그치지 않는다. 비이성적인 대일 혐오증과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한국에도 불행을 강요하는 짓이다. 사실 일본 우익이 바라는 노림수는 바로 이런 상태, 대결적 정서의 지속적 부각이 아닌가 싶다.

말려들지 않을 방도는 없을까. 무대응만이 상책인 것도 아니고 맞불이 확실한 대응이란 주장에도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그때그때의 대증 처방에 국한될 뿐이다.

역시 근본적인 것은 이사갈 수 없다는 숙명적인 조건이다. 국제관계에서 이웃나라(인국)는 교류하고 화목하게 지내지 않는 한 적이거나 최소한 불편한 사이다. 따라서 ‘한-일 선린’을 방해하는 저 관동군적인 시대착오와 망상과는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휴머니즘에 바탕한 상호주의적 관점들이 ‘보편적 다수’가 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양쪽 두루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한류’를 타고 전에 없이 호전되던 한-일 감정이 다시 난항을 겪는 요즘 개인적으로 부러운 소설 한 편이 있다. 프랑스 작가 베르코르가 대독 항전의 최일선에서 펴낸 〈바다의 침묵〉이다.

독일군 청년장교 베르너 폰 에브레낙은 점령군으로 프랑스에 진주해 노인과 조카딸이 사는 집을 접수한다. 첨단의 교양인인 베르너는 “음악은 독일이 위지만, 미술은 역스 프랑스”라며 두 나라가 하나가 된다면 얼마나 훌륭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인가를 역설한다. 두 프랑스인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화려한 웅변과 깊디깊은 침묵이 치열하게 맞서는 가운데 점차 베르너는 침략과 지배의 기반 위에서 외치는 우호와 협력과 문명이란 구호가 얼마나 기만이며 위선인가를 깨닫게 된다. 결국 이 독일청년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는 최전방 동부전선으로 자원해 가게 되고, 그 소식을 알게 된 두 프랑스인은 마침내 침묵을 깨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지만 문화의 논리로 전쟁의 명분을 무력화하는 소설이 침략자에 대한 증오가 끓어넘치는 지하전선의 한복판에서 레지스탕스 ‘심야총서’ 1호로 출판됐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던 기억이 뇌리에 생생하다.

일본 우익의 준동은 그것대로 준엄하게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대립이 두 나라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려는 노력에 걸림돌이 되어서도 안 된다. 한-일 우정의 해의 뜻은 무엇인가. 베르코르의 통찰력, 곧 베르너와 같은 성찰과 두 프랑스인과 같은 관용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오는 5월부터 〈한겨레〉 연재가 예고된 한, 일 두 나라 작가의 합동 소설 집필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귀한 지면에 자기 신문사의 기획을 선전하려는 게 아니다. 이 소설은 “한국과 일본의 두 젊은이가 서로 다른 국민성과 풍습, 사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 등을 극복하고 엉켜 있는 오해를 풀기까지의 이야기”다. 요즘 같은 양국 분위기를 보면 꼭 성공했으면 하는 책임감마저 들게 하는 줄거리다.

공지영씨와 함께 소설을 쓰게 될 일본 소설가 쓰지 히토나리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백년 뒤를 바라보는 또하나의 흐름에 우리를 맡겨보려 한다”고 집필에 임하는 자세를 밝혔다. 100% 공감한다.

나라의 힘을 미사일의 수, 영토의 크기, 국민총생산이나 기타 온갖 경제지표로 상상하고 싶어하는 세계의 모든 마초적 이데올로기를 한국과 일본의 두 풋풋한 젊은 주인공들이 보기좋게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이인우 문화생활부장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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