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8 19:07
수정 : 2005.03.08 19:07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잔다/ 잠꾸러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한다/ 멋쟁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
아마도 한국의 삼십대 이상 성인이라면 아련히 떠올릴 정겨운 노래다. 지금은 골목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며 노는 아이들을 찾기 어려워졌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나오기 전, 이 노래와 함께 했던 놀이는 골목에서 인기 1순위의 게임이었다. 이 놀이처럼, 여우도 어느날 갑자기 우리 곁에서 사라진 동물이 되었다.
한때 그렇게 흔하던 여우가 한국에서 왜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지는 야생동물을 전공한 학자들 사이에서도 수수께끼에 속한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되어 갔지만 여우가 멸종위기에 몰린 경우는 드물며, 오히려 많은 나라에서 여우는 너무 많아 골칫거리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우는 1960, 70년대에 모피를 얻기 위한 과도한 사냥과 전국적 쥐잡기운동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의견이 있지만, 어떻게 산골 깊숙한 곳에 살던 여우까지 씨를 말리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여우가 사라진 이유는 말할 것도 없고, 여우라는 동물 자체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솔직한 말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금까지 여우가 사라진 과정과 원인에 대한 학술적 조사 한번 없었을까.
지난해 이맘때쯤에 강원도 양구에서 죽은 여우 한마리가 발견되어 언론의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지리산에서 마지막으로 여우가 발견된 지 26년 만의 일이었다. 환경부가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그와 동시에 다음 단계로 여우의 복원 문제를 심각히 검토할 것을 환경부에 제안한다.
여우는 주로 쥐 종류의 작은 포유류를 먹잇감으로 하므로 생태계에서 그들의 수를 조절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따라서 여우가 복원되면 어쩌면 신증후군 출혈열, 쓰쓰가무시병처럼 설치류에 의하여 전파되는 사람의 질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또 여우는 개구리, 새, 곤충, 산딸기와 같은 열매 등 기회 되는 대로 먹는 잡식성이라 북극지역과 사막을 포함하여 지구상 어디에서건 잘 적응하여 살아간다. 또 북한이나 주변나라에서 우리와 같은 혈통의 여우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이든 사라진 동물을 복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여우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몇가지 인수 공통 전염병의 중요한 매개동물이다. 광견병과 포충증이 그것으로, 광견병은 현재 여우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주로 야생 너구리에 의해 매개되고 있으며, 포충증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야생동물에 의해 발생된 예가 보고된 적은 없지만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중요한 인수 공통 질병이다. 여우 복원에 의해 개체수가 증가한다면 향후 이들이 공중보건 측면에서 인간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게 될지 면밀한 조사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우 복원을 한다 하더라도 함부로 서둘러서는 안 된다. 적어도 10~20년의 장기계획을 세우고 그 타당성 조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여우의 멸종 원인, 생존 가능성, 분포 및 생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분석과 여우의 계통분류에 대한 연구, 여우가 매개하는 인수 공통 질병, 개체군 증가 때 예측되는 문제점들, 외국의 복원사례에 대한 연구가 포함된다.
여우는 주로 민가 가까운 산이나 들판에 사는 동물로서, 사람과 야생동물의 세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고리 구실을 할 수 있다. 명절날 고향을 다녀오며 우리의 아이들이 길가에 보이는 진짜 여우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꿈일까.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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