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8 18:36
수정 : 2005.03.08 18:36
“박주영은 프로 축구 경기에 언제 나와?” “단테 존스 때문에 신바람 나기는 한데, 프로 농구판이 외국인 선수 한 사람한테 좌지우지되니 이래서 되겠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즌 초가 되면, 으레 박찬호 김병현 등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이 온통 팬들의 관심사였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천재 골잡이’라는 박주영(20·FC서울), 프로 농구판에 갑자기 등장한 ‘괴물’ 단테 존스(30·에스비에스) 두 스타가 프로 스포츠판의 관심사를 확 바꿔 놓았다.
7일 발표된 2005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6.10~7.2·네덜란드) 조 추첨에서 한국이 브라질·나이지리아·스위스 등과 ‘죽음의 에프(F)조’에 편성됐는데도, “박주영이 브라질을 잡는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오는 실정이다. ‘지능지수 150의 축구천재’,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어갈 재목감!’ 그가 올해 초 카타르 8개국 국제친선 축구대회에서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하며 한창 주가를 올릴 땐, 유럽 빅리그 최고 선수인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지네딘 지단(레알 마드리드)에까지 견준 언론들도 있었다.
걸출한 스타의 출현은, 역시 스포츠팬들에게는 밤잠을 설치게 하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천재성을 타고난 선수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감당하기 힘든 지나친 찬사가 한창 자라나는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박주영 선수에게 그를 아끼는 팬으로서 두어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우선, ‘축구 천재’라는 말을 잊어주기를 바란다. 설령, 자신이 그렇다고 믿고, 사람들이 그렇게 치켜세워도 말이다. 당대에 그런 칭호는 줄 수 있는 선수는 만 18살 때인 1994년 미국월드컵 출전선수 명단에 낀 호나우두(레알 마드리드)나, 요즘 한창 뜨는 호나우디뉴(FC바르셀로나) 정도가 아닐까? 그동안 국내 축구판에서는 박주영 선수처럼 축구 천재나 이에 버금가는 찬사를 들으며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유망주들이 적지 않았다. 멀리는 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4강 신화의 주역인 신연호 김종부 노인우 선수, 90년대 들어서는 최철우 고종수 이동국 선수, 2000년대 정조국 최성국 선수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 과연 성인 국가대표에서도 화려한 꽃을 피운 선수는 몇이나 되는가? 더욱이 박 선수는 큰무대에서 검증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아직은 갑자기 나타난 기대주 정도에 불과하다. 그보다 더한 수사와 칭찬은 나중에 붙여도 늦지 않다.
두번째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찬사를 동료와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니다. 11명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때, 골도 넣고 이길 수 있다. 탁월한 골잡이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청소년 축구대표팀에서 박주영 선수가 골을 많이 넣을 수 있었던 것도 도우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마리오’ 김승용(FC서울) 선수는 박 선수와는 ‘바늘과 실’ 같은 존재다. 그의 절묘한 센터링이나 패스가 없었더라면, 박 선수의 골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주영 선수의의 골뒤풀이는 좀 이기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최근 네티즌들로부터 찬반론에 휩싸이기도 한, 기도하는 모습의 골 세리머니에 앞서, 자신이 골을 넣는 데 도움을 준 동료에게 감사 표시부터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영표 선수도 지난달 9일 쿠웨이트와의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그동안 보여줬던 ‘기도’ 골뒤풀이는 하지 않았다. 대신 포효하는 몸짓으로 동료와 포옹한 뒤, 나중에 조용히 감사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단지 축구와 관계 없는 한 곳에만 감사하는 그런 골뒤풀이는,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축구스타로서 그들의 한가지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것일 수 있다.
오늘(9일) 저녁 8시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삼성하우젠컵 경기(FC서울과 대구FC의 대결)에, 축구팬들이 기대해 마지 않는 기대주 박주영 선수가 나타난다. 그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스타로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골뒤풀이도 보고 싶다.
김경무/스포츠부 차장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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