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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7 20:01 수정 : 2005.02.17 20:01

17대 국회는 이전과 많이 다르다.

당장 눈에 띄는 것만 봐도, 의원들의 돈 씀씀이가 달라졌다. 촘촘하게 감시장치를 마련해둔 법 규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명절 때 선물상자를 돌리는 대신 휴대전화 문자쪽지로 인사를 보내는 의원들이 많아졌다. 한 끼에 몇만원 가는 점심이나 저녁이 예사였던 15대나 16대 때와 달리, 요즘은 몇천원짜리 식당을 찾는 의원들도 자주 눈에 띈다. 국회의장실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와 ‘어렵게’ 생활하는 의원들을 위한 기숙사 마련과 주거비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보기에 따라선 안쓰러운 모습일 수 있겠지만, 어떻든 바람직한 변화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의원들 사이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다. 16대 이전에는 ‘△△연구회’나 ‘○○모임’ 간판보다 그 모임을 이끄는 의원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딴 ‘▽▽계’가 더 익숙했다. 계파는 보스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요즘은 특정 의원모임에 중진 의원이 들어 있어도, 그를 보스로 생각하는 의원들이 별로 없다. 이것 역시, 나쁘지 않은 변화다. 그만큼 당내 민주주의와 참신한 의정활동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항상 그렇듯이, 좋은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뭔가 바뀌긴 한 것 같은데, 가만히 따져보면 딱 부러지게 이뤄낸 것도 없다.

지난해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2004년 안에 모두 처리하겠다고 장담했던 ‘4대 개혁법안’ 가운데 3개 법안은 2월 임시국회 처리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총선 전 탄핵 역풍에 놀라, 여의도 빈터에 천막당사를 치고 ‘환골탈태’를 다짐했던 한나라당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보수를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여야 사이에 타협이나 협상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연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최고 지도부가 모여 이른바 ‘4자 회담’을 했지만, 막혔던 곳을 뚫기는커녕 오히려 더 엉키게 했을 뿐이다. 당시 회담에 배석했던 한 실무자는 어제 한 말을 오늘 태연히 뒤집는 한 참석자의 모습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고 했다. 회담에서 주장할 내용이 빼곡이 적힌 ‘공포의 수첩’을 들고 메모에서 벗어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 한 야당 대표의 모습도 보기 민망했지만, 그런 회담의 속내를 공개한 여당 쪽의 모습도 협상의 금도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통크게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꼭 성사시켜야 할 것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얻어내는 지도자의 풍모는 모두 아니었다.

물론, 리더의 문제만은 아니다. 수십년째 보아온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과 욕설은 17대 국회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동료 의원의 옛날 일을 들춰내 빨간색과 회색의 낙인을 찍거나, 증오와 불신으로 가득찬 말로 회의장을 어지럽히는 일도 여전했다. 정치권 밖에서 그런 모습을 욕하던 초선 의원들이 그런 장면에 등장하는 것도 안타깝다. 욕하면서 닮는 꼴 아닌가.


이제 17대 국회는 첫해를 마치고, ‘조정’을 시작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설 연휴 전 각각 의원 연찬회를 열어 당의 노선 문제를 논의한 것은 조정의 첫걸음이다. 열린우리당은 4월 초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뽑아야 하고,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의 지도력과 ‘가능성’을 둘러싼 내부 논란이 한창이다. 국회도 17일 정치개혁협의회 첫 회의를 시작으로 정치 관련법 개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여야가 어떤 모습으로 조정을 마칠지는 관심을 갖고 지켜볼 문제다. 특히, 좋은 변화의 싹을 자르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대로 두고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아가 이런 조정 과정에서 ‘포장만 그럴듯하고 내용은 없는 정치’,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증오와 불신만 키우는 정치’나 그런 정치인이 설 땅을 잃는다면 그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몸싸움이나 낙인찍기 등 정치의 나쁜 모습을 고스란히 빼닮은 행태가 정치권 밖에서도 자주 나타난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현호 정치부 차장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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