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5 17:43
수정 : 2005.02.15 17:43
아파트값 상승세가 다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등이 모두 나서 진화에 애를 쓰고 있다. 고삐를 늦췄다가 ‘소’가 난동을 부리자 허둥대는 듯한 모습이다. 최근의 집값 상승세는 우리 주택시장이 얼마나 불안한 상태인지, 그리고 정책 당국자들의 서툰 대응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준다.
서울의 아파트값은 소득 수준에 비해 너무 올라 있는 것 같다. 평당 가격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세 배 정도 되는 일본의 도쿄 수준에 와 있다. 아파트 크기는 일본보다 더 커, 중산층이 실제 사는 아파트의 평균값은 도쿄를 능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불씨가 던져지니 금세 값이 들썩인다. 넘치는 부동자금, 난립한 부동산 중개업소 등 ‘거리’만 있으면 투기를 부추기는 세력, 부동산 투기로 축재하려는 상당수 다주택자들의 천민자본주의적 물욕 등 펀더멘털(기초여건)을 왜곡시키는 요인들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발화성이 높은 시장에, 정부·국회·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약간의 불씨가 던져지자 곧 아파트값 상승세로 이어진 게 최근 국면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아파트 시장이 가라앉자 여러 곳에서 불씨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회가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를 담은 법안 처리를 미뤄 재건축 시장에서 기대심리가 높아진 상황에서도 경기 회복에 목마른 정부 당국자들은 부동산 대책 후퇴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들을 툭툭 던졌다. 지자체는 재건축 아파트를 초고층으로 짓겠다는 등 개발을 부추겼다. 언론 탓도 크다. 한 곳에서 아파트값이 좀 오르면 추세 반전 조짐인 양 한술 더 떠 보도한다. 지난해로 거슬러 가보자. 치솟던 아파트값이 하향 안정세로 돌아가는 조정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거래 위축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금세 주택경기가 죽었다며 질타한 게 언론이다. 판교새도시의 중대형 아파트 분양값이 평당 2천만원을 웃돌 것이란 설익은 보도도 값을 부추긴 사례다.
단편적 모습은 이렇지만, 이면에는 집 없는 사람의 처지에서 집값을 보지 않고, 집값이 우리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찰하지 않는, 일종의 철학 부재가 자리잡고 있지 않나 싶다. 뛰는 집값에 절망하는 무주택자보다, 건설업체나 기득권층 목소리에 더 귀기울이는 탓이다.
정책 당국자들의 철학 부재는 가계부문 자산 중 부동산 자산이 얼마나 되고 금융자산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통계조차 없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통계는 정책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계의 자산구조가 건전한지, 또 부동산 자산 가액이 지속 가능한 정상 수준인지 등은 통계 없인 파악하기 어렵다. 미국과 일본은 이런 이유 등에서 가계 자산구조를 조사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동안 주먹구구식이었던 셈이다. 이들 나라의 중앙은행 자료를 보면, 공통적으로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금융자산 비중이 부동산 자산의 1.5배를 웃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통계가 없어 알기는 어렵지만 부동산 자산 비중이 훨씬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한 경제 신문은 가계 부문 자산 중 주택을 비롯한 부동산 자산 비중이 80%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이 추정치가 사실에 가깝다면, 우리 가계는 있는 자산을 거의 몽땅 쏟아부을 정도로 집 마련에 짓눌려 있다고 할 만하다.
폭등했던 아파트값이 또 상승세를 탄다면 이후 거품이 꺼질 때 후유증은 어쩌면 일본의 10년 복합불황 같은 수준이 될지도 모른다. 당국자들이 집값 안정에 더욱 분명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 같다. 당국자들이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내던져 시장에 혼란을 주는 일도 없어야 한다.
행정자치부의 2003년 말 통계를 보면, 서울에 사는 362만 세대 중 56%인 202만 세대는 집이 없다. 반면에 수도권과 6대 광역시의 주택 842만채 중 311만채는 세 채 이상 보유자들이 가지고 있다. 복잡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 두 수치는 집값 안정이 왜 필요한지 분명히 말해준다.
김병수 경제부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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