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황 교수의 언론플레이만 욕할 게 아니다. 연구팀의 일방적인 자료에 기대서 대다수 국민들을 눈멀게 한 언론도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다. 지난달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뉴스와 신문을 장식하는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사건은 사실 흥미진진했다. ‘줄기세포’며 ‘배반포’며 ‘테라토마’며 이런 과학 용어가 너무나 생소한 나조차도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과학 공부를 하듯 신문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며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꼭 알고 싶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 현대사에 이렇게 엄청난 사건도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논문조작 당사자들이겠지만 난 무엇보다 이번 사태의 큰 책임은 언론에 있다고 본다. 처음 〈문화방송〉 ‘피디수첩’에서 난자제공 문제의 의혹을 제기했을 때, 나도 세계가 인정한 과학자한테 왜 우리가 나서서 흠을 내나 싶어서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그리고 〈와이티엔〉 보도로 문화방송이 사과방송까지 하는 걸 보며 황우석 박사가 하루빨리 연구실로 돌아와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계속 이어나가길 바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내 모든 생각이 오랫동안 언론에 의해 철저히 세뇌당한 결과라는 걸 알았다.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가 나온 이후 이번 사건을 좀더 폭넓게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기면서 나는 이번 사건에서 결코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사람은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논문조작에 이어 이제 황 교수의 화려한 언론플레이를 탓하지만 그 언론플레이에 북치고 장구친 사람은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인가? 아무런 검증 없이 온갖 미사여구로 국민적 영웅을 만들고, 자신이 보도하는 뉴스 화면에 마치 친분이라도 과시하듯 이번 서울대 징계대상에 포함된 교수 한명과 귓속말을 주고받는 장면까지 길게 편집해 넣은 과학부 기자는 이제는 우리의 뇌과학 기술은 세계 수준이라고 떠들고, 우리의 젊은 연구원들이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실을 외면하고, 여론을 호도하던 사람들의 재빠른 물타기와 변신이 놀랍다. 뻔뻔하다. 그리고 화가 난다. 우리의 언론이 얼마나 애국심을 부추겼기에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황우석 교수 연구실 앞에 진달래꽃을 뿌리며 눈물을 흘리고, 자녀의 손을 붙잡고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 집결해 황우석 교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고 하겠는가? 이제 와서 황 교수의 언론플레이만 욕할 게 아니다. 연구팀의 일방적인 자료에 기대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신문 기사를 작성한 언론인들…. 그로 인해 우리 국민이 얼마나 큰 혼란을 겪었고, 또 얼마나 큰 허탈감에 빠졌는가? 하지만 스스로 이번 사태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논문조작의 1차 책임자를 포함해 지금까지 대다수 국민들을 눈멀게 한 언론도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김혜경/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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