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생존권은 ‘생명의 존엄성’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를 가장 가까이서 가르쳐주는 것이 농업이다. 약육강식의 경쟁보다는 사람과 세상 만물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체험하도록 하는 곳이 바로 농촌이기 때문이다. 쌀 재협상 비준안 반대집회로 농민이 죽고 경찰이 다치고 경찰총장이 물러났다. 또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담 개최에 반대하는 홍콩 원정 집회는 우리 농민 11명의 사법처리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농업인들의 생존을 건 몸부림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관심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버렸다. 아무런 응답도 없는 농업인들의 쓸쓸한 외침에 서글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가는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정치문제는 정치인들이, 경제문제는 경제인들이, 농업문제는 농업인들이 풀어가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실력도, 능력도, 경쟁력도 변변치 못하고, 특히 하루 세 끼 중 한 끼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식량자급률(2003년 27.8%)조차도 얼마나 더 지켜줄지 모르는 우리 농업인들이 이제는 그 자리를 농산물 수출국들의 농업인들에게 내주고 우리 사회의 구호대상이나 도시빈민으로 나앉든 말든 재주껏 해보라는 것은 아니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 농가의 기술수준은 세계적인데 살림살이는 선진국 농가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 농민들의 10a당 쌀 생산량은 504㎏(2004년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수준이 뒤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곧 농가들의 살림살이 차이가 농민들의 기술이나 실력 차이에서 기인하기보다는, 우리와 미국 등의 선진국 국민 간의 농업에 대한 인식과 그 인식에 근거한 정책과 제도들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뜻한다. 농업은 돈벌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농가란 농산물을 생산해 팔아서 그 돈으로 농자재와 생필품, 즉 공산품을 사 쓰면서 살아가는 경제주체다. 예를 들면 쌀 그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기술발전에 의해 ‘쌀이 흔해졌다’는 것이다. 흔해지면 싸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농가가 그 쌀을 판 돈으로 사서 써야 하는 농자재를 비롯한 생필품은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이 나온다. 쟁기는 경운기로, 경운기는 트랙터로 바뀌었고, 경운기와 트랙터는 이제 서로 다른 제품이고 값도 많이 비싸졌다. 텔레비전은 흑백에서 벽걸이까지 새로운 제품이 끊임없이 나왔고,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값은 올랐다. 쌀은 지금 훨씬 흔해졌고, 기껏해야 친환경 쌀과 일반 쌀 등 품질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이다. 그러니 갈수록 흔해지는 농산물을 생산·판매한 돈으로, 끊임없이 더 좋고 비싸진 공산품을 사 써야 하는 농가의 살림살이가 날로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형편은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다.그러나 선진국들은 그 사실을 일찍 깨닫고, 많은 보조금을 줘가면서 적극적으로 농업을 보호하고 농민을 지원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관세와 함께 세계무역기구(WTO)의 양대 쟁점 중 하나인 보조금을 줄이지 않으려고 버티는 나라들도 바로 이 선진국들이다. 농업의 대표적인 보조정책인 직접지불제 관련 예산이 전체 농림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01년 미국은 36%, 유럽연합은 70%로, 우리의 4.1%(2006년은 14%로 올림)에 비해서 월등하다. 선진국들이 뭘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보조금을 들여서라도 농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이나 경제성장률로 선진국을 구분할 수 있을까? 참된 선진국이란 ‘사람 살기 좋은 나라’일 것이다. ‘사람 살기 좋은 나라’의 기본은 인권이고, 인권의 기본인 생존권은 ‘생명의 존엄성’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를 가장 가까이서 보여주고 체험하고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농업이고, 약육강식의 경쟁보다는 사람과 자연과 세상 만물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체험하고 배우도록 하는 곳이 바로 농촌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무너지고 있는 농업·농촌의 앞날은 미처 못 보고, 농산물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그래서 위험하다. 농업과 농촌도 없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농업인들이 수익성이나 돈을 좇아서 농업과 농촌을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고, 또 농업·농촌이 무너져가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이제 우리 농업인들에게 보여주고 실천해야 한다. 이영석/국립 한국농업전문학교 교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