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부모의 열정과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해서 우리 어린이들의 영어능력이 향상된 것이지, 초등 영어교육을 통해서 그런 효과가 나왔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더 이른 시기에 도입하기로 했다. 이번에 제시된 방안을 보면, 이 밖에도 몇 가지 눈여겨볼 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몰입교육에 대한 논의나 수학과 같은 내용 교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 등은 이전보다 논의가 한 단계 진보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아직도 문제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동안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교육부나 일반 국민들은 몇 가지 우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핵심은 조기 영어교육의 효과에 대한 것이다.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열망은 전국민적인 현상으로 하나의 실천적 믿음이 되어 버렸다. 이번에 교육부가 제시한 대안도 근본적으로 그러한 조기 교육에 대한 믿음의 연장선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더 이른 시기에 도입하겠다는 계획은 적절한 대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초등 영어교육의 도입 시기를 1학년으로 낮추었을 때, 전체 취학 전 아동을 영어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아 버리는 상징적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교육적 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1~2학년 기간에 학교에서 제공할 수 있는 영어교육 시간은 기껏해야 70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정도 시간이면, 하루 10시간 정도 영어에 노출되었을 때, 일주일이면 해결되는 시간이다. 그것을 2년 동안 조금씩 나누어 교육한다고 해서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날 것인가? 그러지 않아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친 이후 우리 어린이들은 1~2학년부터 영어 사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만약에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을 한다면, 사교육을 통한 영어교육은 유치원 단계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는 선택적으로 일부 어린이가 유치원에서 영어교육을 받았다면, 앞으로는 더 많은 취학 전 어린이들이 우리말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어 사교육에 내몰릴 것이다. 초등 1~2학년 영어교육 도입의 근거로 제시한 교육부의 주장을 보면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동안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통해서 그 이전보다 영어능력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97년 이후 초등학교 영어교육 도입을 통해서 우리 어린이들의 영어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통계 결과나 수치를 잘 해석하고 제대로 적용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통계 결과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좀더 설득력이 있는 것은 학부모의 부에 의한 영어교육의 효과다. 곧, 부모의 열정과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해서 우리 어린이들의 영어능력이 향상된 것이지, 초등 영어교육을 통해서 그런 효과가 나왔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교육부는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근본 문제나 처방에 대해서 제대로 진단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영어 사용 환경에서 언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는가 하는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영어를 배우는 데 들어가는 전체 교육시간이 중요하며, 집중이라고 하는 문제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더불어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무엇이 어떻게 벌어지고 진행되는가 하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 영어교육의 시기를 저울질해서 국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영어교육 시간을 집중하고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의 질적인 측면을 향상시켜야 한다. 또한 각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영어마을과 학교 영어교육의 협력, 공교육과 사교육을 조화시키는 접근이 필요하다.마지막으로 이제는 영어에 관해서 국민과 국가가 서로 솔직하게 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나 국민은 국가나 교육부를 비난하면서 가능하지 않은 책임을 요구하고, 국가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결코 싱가포르나 홍콩이 아니다. 한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적정선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개인의 몫이다. 현재는 그것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으며 그래서 서로 기대치가 맞지 않고 매우 혼란스럽다. 그리고 영어 교육과정 자체를 국가가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과거 산업사회나 권위주의 시절의 관행이지 21세기 모형은 아니다. 차제에 영어교육의 근본적인 처방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영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불필요한 낭비와 갈등과 혼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병민/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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