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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6 18:22 수정 : 2006.01.16 18:22

왜냐면

교장 선생님들이 사학 재단에 당당해지는 것만으로도 학교 운영은 투명해진다. 사학의 대리인에서 교육자의 모습으로 서라는 것이다.

사학법 개정 사태를 통해서 우리 교육계의 음습한 본색들이 여러 가지 드러나고 있는데, 그중에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학 재단과 교장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주종 관계로 맺어져 왔는가다. 대한민국의 교장이 이다지도 초라하고 왜소하고 비겁한 자리였던가.

지난해 5월쯤인가, 서울 건국대학교에서 전국의 사립학교 교장 선생님들이 모여 참으로 웃지 못할 결의를 한 적이 있다. 교육부가 사학 재단이 가진 인사권을 교장에게 주겠다고 했는데 그것을 거부한다는 결의를 한 것이다. 사립학교의 교장이라는 자리가 도대체 어떤 위치이기에 이렇게 스스로 꼬리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나는 이 사건이야말로 우리 한국 교육사에, 아니 세계의 교육사에 가장 부끄럽고 참혹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학 재단에 묻는다. 그런 굴욕적인 결의를 해야 했던 그 교장들이 도대체 누군가?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학부모들과 늘 몸을 맞대고 학교의 교육을 이끌어가는 분들이 아닌가. 학교 교육의 중심에 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어쩌면 외로운 지도자로서 학교 교육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불신의 교육을 신뢰받는 교육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분들이 아닌가 말이다. 그분들에게 그런 깊은 마음의 상처를 주고 과연 어떤 교육을 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제주에서는 한때 다섯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신입생 배정을 거부했다. 어이없게 학교 폐쇄에도 맞장구를 쳐야 했다. 학교의 문을 닫겠다는 말을 교장 선생님 자신의 입으로 해야 하는 운명이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 것이며, 신입생 배정 거부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다짐 대회까지 해야 하는 신세가 얼마나 처량했을까. 스스로에 대한 분노는 얼마나 컸을 것인가?

그러고 보니 그 막강한 권력을 지닌 사학 재단의 힘 앞에서 느끼는 교장들의 무력감은 오랜 전통이었다. 그 무력감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자신이 교장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이기도 했다. 순종하지 않는 교장을 어느 사학 재단이 바라겠는가?

사립의 교장 선생님들이시여, 많이 늦었지만 이참에 교장 독립을 선언하시라. 그리고 용기를 내어 교장 독립운동을 함께 하시라. 한두 명의 개방형 이사로 학교가 투명해질 수는 없다. 어떤 왜곡된 욕망을 가진 사학이 그 욕망을 채우겠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게 우리 사학의 구조가 아니었던가.

교장 선생님들이 사학 재단에 당당해지는 것 하나만으로도 학교 운영은 곧바로 투명해진다. 사학의 대리인 자리에서 교육자 본연의 모습으로 떳떳하게 서시라는 것이다. 교장이라는 자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불신의 눈초리에 갇힌 사학을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절실한 과제요 과업이다.

사립학교에서 교장의 독립은 사학 교육의 독립이요, 우리 교육의 독립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전국 사립학교의 교장 선생님들이 한 인격자로, 교육자로 독립하는 것이 사학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지름길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힌 사학 재단이 있을 때 꾸짖을 수도 있고, 힘 있게 학교 경영의 바른 길을 갈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눈빛이 더 두려운 교장, 양심과 안타까움으로 우리 교육 앞에 서는 교장 선생님을 갈망하고 있고 요구하고 있다.

고춘식/서울 한성여중 교사·전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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