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검찰은 지난번 엑스파일 관련 수사에서 삼성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거명된 검사들을 모두 무혐의 처리했지만, 만약 경찰에 독립적인 수사권이 주어진다면 앞으로 이러한 사건은 경찰에서 수사할 수 있다. 1월6일치 <한겨레>에는 한 시민이 9차의 고소 끝에 검찰의 부당한 사건 처리에 대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 시민은 경찰이 폭행사건 처리 과정에서 담당 형사가 합의를 강요하는 직권남용을 했고, 재조사 요구에 폭언과 협박을 했으므로 처벌해 달라고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를 진정사건으로 접수하여 무혐의 처리해 재정신청 기회가 박탈되면서 기나긴 법적 투쟁이 이어졌다. 이 시민은 그래도 기나긴 고투 끝에 마침내 검찰의 업무처리 잘못이라는 부분에서 정의의 승리를 쟁취한 경우로서 그동안의 고투를 일부나마 만회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최초로 이 사건의 본안으로 고소된 내용인 경찰의 직권남용과 폭언, 폭행에 대해서는 끝내 그 시민이 패소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권력’의 남용을 내용으로 하는 고소에서 종래 대부분의 경우에 검찰이 무혐의 처리하고 이후 재정신청 대상의 제한으로 인해 아예 재판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재판에서 결국 고소인이 패소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은 내가 한 진정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기에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두 권력기관인 검찰과 경찰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검찰에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이 주어져 있는 체제에서는 경찰이 검찰을 견제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검찰도 경찰을 자신의 손발로 이용하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크게 문제가 안 되는 ‘사소한 잘못’은 묵인하는 상호 공생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보기에 ‘사소한 잘못’으로 보이는 것이라도 피해 당사자 는 그 억울함이 피눈물이 되는 것이기에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작년에 소위 ‘수사권 조정’(경찰에서는 이를 ‘수사구조 개혁’이라고 함)을 주제로 열린 공청회에서 어떤 검사가 경찰에게 그동안 검찰의 보호 아래 여러 이익과 혜택을 누려 왔는데, 왜 이제 검찰의 보호를 벗어나 거친 들판으로 나가려고 하느냐는 취지로 발언한 것은 종래 두 기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나는 두 기관의 이러한 부적절한 관계를 고려할 때 이제는 경찰이 독립적 수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소신이 든다. 물론 나도 경찰의 수사능력이 아직은 부족하고, 현장에 부조리가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도 엄연히 중요한 수사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현재 전체 형사사건의 약 97%를 경찰이 수사하는 상황에서 계속 두 기관의 불평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는 경찰에 독립적인 수사권을 주어 두 수사기관 사이에 서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도록 함으로써 수사기관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고 범죄수사의 고도화를 기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더욱이 현정부가 의욕을 가지고 추진했던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의 설립이 물건너 간 상황이라면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그 대안적 의미를 내포한다는 측면에서도 더욱 필요하다고 하겠다. 검찰은 지난번 엑스파일 관련 수사에서 삼성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최고 수천만원의 돈을 받은 것으로 거명된 검사들을 모두 무혐의 처리함으로써 국민적 분노를 야기했지만, 만약 경찰에 독립적인 수사권이 주어진다면 앞으로 이러한 사건은 당연히 경찰에서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게 된다.혹자들은 소위 ‘시기상조론’을 거론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이 그 선후를 명확히 할 수 없는 논리에 불과한 측면이 있다. 현재처럼 경찰 지위가 검찰의 수족에 불과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언제 경찰의 수사능력이 크게 향상될지 기약할 수가 없다. 오히려 먼저 과감하게 경찰에 독립적인 수사권을 부여하면 경찰 스스로 이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 우수 인력들을 유치할 것이고, 또한 우수 인력들이 스스로 앞다퉈 경찰에 투신하게 될 것이다. 종래 우리가 검찰의 수사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검찰에 우수 인력들이 투신한 데 따른 것인바, 경찰에 수사권이 주어지면 우수 인력들이 과거처럼 검찰에만 몰리지 않고 경찰에도 투신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을 높게 평가하는데, 이 조직은 그 수장이 대통령의 지명을 거쳐 상원의 인준으로 임명되고 기소권 없이 수사만을 담당하는 특별수사기구다. 이것은 검찰 조직이 아니라 경찰 조직인데 우리도 경찰에 독립적인 수사권을 부여한다면 이와 같이 높은 수사능력을 가진 경찰을 육성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경찰권의 남용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우리 검찰은 외국과 달리 수사업무의 비중이 커 인권보호 기관이 아니라 별도의 수사기관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검찰에서 수사받던 피의자가 고문으로 숨지는 사건도 발생하는 것이다. 검찰에 인권보호 기능을 맡길 수 없어서 별도로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정부기구를 운영하고 있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검찰에 직접 수사권이 있는 우리의 경우에 인권 보호를 위해서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지휘권이 필요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라 하겠다. 정재룡/국회 사무처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입법심의관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