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2 09:51
수정 : 2020.01.02 13:31
임세은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부동산’ 단어의 뜻 그대로 옮기자면 ‘움직이지 않는 자산’이지만 올겨울까지도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이에 정부도 대출 규제라는 ‘깜짝’ 카드를 꺼내어, 특정 지역 중심으로 요동치는 아파트값 상승을 막아보려 하고 있다. 2020년 대책의 핵심도 한 축은 대출 규제에 기반한다. 이번 정책에 여러 반대와 걱정이 있고, 충분히 납득할 만한 우려들도 있다. 하지만 언론은 잇달아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며 ‘백약이 무효’라는 도그마를 내세우고 있다.
일례로 세밑 앞두고 나왔던 ‘졸지에 계약금 1400만원 날릴 판’이란 제목의 기사는 얼핏 무주택 서민이 정부의 대출 규제로 선의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속출할 수 있다고 속단하게 한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사 속 매수자는 서울의 이른바 입지 좋은 곳에 16억원가량의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은행대출 4억원을 받으려는, 즉 현금 12억원 보유자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민’이라는 개념에서는 많이 벗어난 구매자인 셈이다. 이 밖에도 ‘대출 규제로 발이 묶였다’ ‘아파트 가격 상승 내년에도 멈추지 않을 듯’ 등과 같은 논조의 기사들을 생산해내며 프레임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매체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위 기사들에 언급된 거래지역은 이미 전체가 서울, 특히나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이며 매수자들은 이미 수십억원을 보유하고 구매에 ‘단 몇억원’이 부족한 시민인 것을 보면, 정부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해당 기사들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정부 시책이 발표되자마자 이러한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들의 모양새를 보니 의심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무주택 서민들은 5년여 전 박근혜 정부 시절에 ‘빚내서 집 사라’는 말을 따랐어야 한다는 푸념으로 응답하기도 한다. 불황의 사이클 안에서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내놓은 정책이었지만, 국민들은 이를 작금의 ‘부동산 대란’을 내다본 혜안으로 여기는 현실까지 오게 되었다.
경제는 심리가 많은 작용을 한다. 특히 부동산은 여느 재화처럼 일반적인 수요 공급 시스템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특수한 물건이다. 실제로 2018년 9·13 대책 이후 부동산 소비심리 지수가 빠르게 하락하였고,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도 후행하여 하락하였다. 그리고 2019년 5월 이후 소비심리 지수가 급격히 상승하자,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 역시 후행하여 상승 국면으로 들어갔다.
특히나 서울 역세권 시장의 소비심리는 서울, 그리고 전역에 걸쳐 더 큰 영향을 준다. 혹여나 전체 시장 참여자들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파트의 가격이 선도하는 가격 상승 물결에 현혹되거나, 마침내 부동산 전체 시장을 흔드는 ‘왜그 더 도그’ 현상(Wag the dog,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으로 빗댐)이 이어질까 두렵다. 만약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미래의 대한민국 경제가 부동산이란 절벽을 타고 장기 불황의 터널로 직행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 결국 그 피해는 고가의 아파트를 지닌 ‘유주택 대출자’가 아니라 ‘진짜 서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 각계각층, 특히 언론은 이제 막 나온 부동산 대책에 대해 날카롭지만, 조금은 더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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