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1 18:17
수정 : 2019.12.12 02:37
황철우 ㅣ 서울교통공사노조 사무처장
서울지하철 하루 이용 승객은 730만명이나 된다. 이젠 지하철이 없는 서울은 상상할 수도 없다. 출퇴근 시간뿐만 아니라 평일 낮 시간대와 주말에도 지하철은 늘 혼잡하다. 약속시간을 지켜주고 사고도 적기 때문에 이용객이 많다. 무엇보다 지하철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지하철 이용요금도 최근 4년 동안 전혀 오르지 않았다. 원가 대비 60% 수준이다. 버스 환승 할인까지 적용된다.
그런데 사실 승객 입장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지금은 잊혀지고 있지만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는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이 마련됐지만 지하철 객실 의자를 불연재로 바꾸는 것 말고는 개선된 것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2호선 상왕십리 열차 추돌사고가 발생해 또다시 온 국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다행히 기관사의 빠른 대처와 후속조치로 대형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다. 사고 발생 이후 원인 조사와 대책 마련이 이루어졌지만, 노후 전동차 조기 운행중지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지하철 사고는 대형 인명 피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전동차 한대에 많게는 2천명 가까운 승객이 타며, 대부분 사고가 지하터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그만큼 사고 수습도 힘들다.
2004년부터 ‘암흑의 터널로 매일 출근한다’는 기관사의 죽음이 이어졌다. 무려 아홉명이 공황장애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다. 시민의 발을 책임지는 기관사의 죽음은 사회적 충격이기도 했다. 가톨릭대 성모병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인과 비교할 때 기관사의 공황장애는 7배, 유병률은 15배, 우울증은 2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4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면서, 기관사 근무환경개선단이 꾸려졌다. 이후 2인 근무 실시, 운전시간 축소, 안전인력 충원,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 등의 권고안이 마련됐다. 하지만 공황장애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1인 근무는 지금도 그대로 시행되고 있으며, 안전인력 충원과 노동조건 개선은 자구 노력 선행과 예산 부족을 핑계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 도시교통실이 앞장서서 1~8호선 지하철 안전 운행을 책임지는 기관사의 운전 시간을 일방적으로 증가시켰다. 평균 운전시간을 12분 늘리고 106명을 구조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근로기준법과 취업규칙, 단체협약과 노사합의를 위반하면서 19년 전 운전시간으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덩달아 시민의 안전도 19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운전시간 축소는 못할망정 운전시간 증가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불법적이고 부당한 운전시간 증가를 해결하기 위해 1인시위와 천막농성을 하면서 박 시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달 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관사들이 불안한 심정으로 근무하게 되면 시민의 안전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인력 충원과 시설 투자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관사 한명이 많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며, 96개 역에서 1인 역사 근무가 이루어짐에 따라 역사 내에서 역무원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안전시설 점검을 위한 2인 1조 근무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수익성과 효율성의 논리 앞에 안전과 공공성은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불안한 기관사와 더 불안한 지하철을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것은 간단하다. 법과 약속을 지키면 된다. 단 1분도 경영진 마음대로 노동시간을 증가시킬 수는 없다. 그게 근로기준법이다. 인권변호사 출신 시장 아래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기관사의 생명과 시민의 안전은 노동존중특별시라는 허망한 구호보다 그저 있는 법과 약속을 제대로 지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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