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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9 18:24 수정 : 2019.12.10 02:08

이소연 ㅣ 시인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일본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캠프 슈와브’ 앞에 차려진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우리가 갔을 땐 아무도 없었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현지 활동가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길을 헤매다 헤노코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에는 네온사인이 흐르고 그 꼭대기에 ‘웰컴 투 헤노코’라는 문구가 딴 세상 말처럼 박혀 있었다. 마치 쇠락해가는 유원지 입구 같았다. 각 도시의 경계를 넘어설 때마다 자주 보게 되는 환영한다는 문구가 어쩌면 거절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함께 간 친구는 내가 계획한 여행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공항 출입국장에 줄을 서서 나는 친구에게 오키나와의 삶에 대해서 어설프게 아는 체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들었다. 친구는 오에 겐자부로의 <오키나와 노트>의 한 구절을 읽어주었다. “‘나는 왜 오키나와에 가는가?’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너는 왜 오키나와에 오는가?’라고 거절하는 오키나와의 목소리와 겹치며 언제나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 두 목소리가 동시에 ‘바보!’ 하고 조롱한다.”

타자는 절대 마음을 활짝 열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타자의 소통은 ‘거절’에 가깝다. 닿을 수 없는 심연에 가까스로 발을 들여다 놓는 것 그게 소통의 맨 처음이다. 오키나와에서 지내는 내내 제주가 겹쳐 보였다. 어쩌면 지금도 거절의 말을 듣기 위해 제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제주 제2공항을 반대하는 글에 달린 댓글에서 제주 방언을 보게 되면 더 유심히 읽었다. 제주 시민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통일되지 않은 낱낱의 목소리들은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궁금해서였다.

많은 댓글 중에서도 인상에 남은 것은 “육지것들이 뭘 안다고 떠드느냐”는 말이었다. 나는 거기서 강력한 거절을 읽었다.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하자. 나는 여전히 외부인이므로 그 어떤 입장에 대해서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많이 조사하고 더 많은 입장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부동산 정보와 눈이 마주쳤다. 부동산업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따른 제주도 투자 가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어느 시기에 어느 정도의 투자금으로 얼마나 좋은 땅을 매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는 기사와 동영상이 한가득이었다. 거기서 통용되는 가치관은 단 하나였다. 돈! 마치 떨어진 사탕에 들끓는 개미떼를 보는 듯했다. 투자 가치라는 말이 매우 미래지향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아이러니하다. 무엇이 미래를 위한 것일까?

공항 하나가 더 생기고 도로가 깔리고 건물이 서고 관광상품이 개발되면 어떤 것을 잃게 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진정한 투자 가치가 무엇인지, 기회비용을 따져보고 진짜 제주도민이 바라는 경제 발전에 합당한 것인지 합리적 비교를 해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쪽이나 저쪽이나 확증편향적인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고려해 재검토를 한다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절차적으로 뭔가를 검토하고 중재안을 만든다 해도 합의하지 않을 마음들이 거기 있다. 어떤 사람들은 숲보다는 도로를 원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평화보다는 더 많은 관광객을 원한다. 물가가 치솟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에는 삶이 너무 팍팍해서 자꾸 뭔가를 내다 팔게 되기도 할 것이다. 결론은 다 돈과 연결된다. 돈을 벌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자본은 언제나 힘이 세다. 내가 거절의 얼굴을 마주하고도 물러서고 싶지 않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미 확정적으로 얘기되는 것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고려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끝까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태는 말을 못 하니까. 말 못 하는 자연을 아파하는 사람들의 울분과 안타까움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많은 환경단체는 힘센 자본에 끝까지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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