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정신의학전문의 아이가 아픈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때가 가장 괴롭다고 루렌도 부부는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8개월째 발이 묶여 있는 루렌도 가족은 아이가 아파도 공항을 나갈 수 없고 외부 진료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도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곱살 실로는 간단한 항생제만으로도 나을 수 있는 외이도염을 치료받지 못해 한달 가까이 귀에서 피고름을 흘리기도 했다. 필자가 루렌도 가족의 의료지원을 위해 공항을 처음 찾았을 때 루렌도씨의 혈압은 200/160을 넘기고 있었다. 루렌도 부부는 네명의 어린 자녀를 돌보느라 본인들이 혹사되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공항 라운지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기에는 쾌적한 곳이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절한 환경이다. 공기는 춥고 건조하며 밤에는 밝은 빛과 소음으로 수면을 유지할 수 없다. 24시간 행인들에게 노출되어 있고 가족의 사생활은 없다. 이런 곳에 사는 것을 우리는 노숙이라고 일컫는다. 성인도 견디기 어려운 노숙생활을 열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 네명이 겪어내고 있다. 공항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은 매우 제한적이며 불균형한 영양섭취가 불가피하다.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이 빵이나 시리얼 따위로 두끼를 때운다. 다들 신선한 채소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나마 지원단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기아 상태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이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꿋꿋이 자라고 있다. 한달에 한번 의료지원을 갈 때마다 조금씩 키가 크고 있는 것이 눈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의 삶은 2018년 12월에 멈추어 있다. 앙골라를 떠난 이후 또래 친구들을 잃은 것은 물론 받아오던 교육도, 즐겨 하던 신체활동도 모두 잃어버렸다. 아이들은 때로는 뛰어놀고 싶지만 공항에서 숨죽여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루렌도 부부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에너지 발산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어느새 소곤소곤 말하는 법에 익숙해져 있다. 큰 소리를 내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조그마한 장난에 까르르 웃다가도 이내 어깨를 움츠린다. 루렌도 가족은 앙골라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콩고 출신이다. 과거 앙골라가 내전에 휩싸였을 때 이웃 나라 콩고로 피난을 갔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현재 앙골라에서 반역자라는 멸시와 차별을 겪으며 수십만명씩 국외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앙골라에서 택시 운전을 하던 루렌도씨는 일반 시민도 아닌 바로 경찰에게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했고 그사이에 아내는 경찰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앙골라의 특수경찰은 국가의 적이라는 자의적인 판단만으로도 시민을 사살할 수 있기에 루렌도 부부는 출국을 서둘렀다고 한다. 가장 빨리 구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국행 비행기였다. 막상 와보니 상륙도 허락하지 않은 한국이지만 이곳에서는 적어도 총에 맞을 걱정은 덜어놓을 수 있었다. 루렌도 부부는 앙골라에서 겪은 일을 아이들은 모르게 하고 싶었지만 난민 신청 불회부 취소를 요구하는 재판 과정에서 아이들도 부부가 겪은 무서운 일을 알게 되었다. 루렌도씨는 네명의 자녀가 인천공항에서의 경험을 길었던 소풍으로 기억하기 바란다고 했다. 아이들이 정말 그렇게 기억할지는 의문이다. 아홉살 레마는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픈 것이나 학교에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앙골라로 돌아가 부모님이 죽을까봐 무서운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루렌도 부부는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결국 이렇게 공항에서 서서히 죽게 되는 것이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있다. 루렌도 가족이 감당하고 있는 스트레스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이들이 난민심사를 받을 자격도 없다고 한다지만 한국에서 8개월째 겪고 있는 일만으로도 이들은 이미 난민이다. 왜 하필 한국을 택해서 이런 고생을 하느냐는 모진 질문 대신 우리나라가 유엔 난민협약 가입국에 걸맞은 난민심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지 자문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이들이 공항에 사실상 구금된 상태로 지내는 한 의학적인 도움이 근본적으로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의사로서 좌절한다. 루렌도 가족에게 정작 필요한 처방은 조용한 보금자리와 햇빛, 그리고 우리나라의 평범한 바깥공기다.
왜냐면 |
[왜냐면] 이들이 난민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난민인가 / 이승홍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정신의학전문의 아이가 아픈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때가 가장 괴롭다고 루렌도 부부는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8개월째 발이 묶여 있는 루렌도 가족은 아이가 아파도 공항을 나갈 수 없고 외부 진료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도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곱살 실로는 간단한 항생제만으로도 나을 수 있는 외이도염을 치료받지 못해 한달 가까이 귀에서 피고름을 흘리기도 했다. 필자가 루렌도 가족의 의료지원을 위해 공항을 처음 찾았을 때 루렌도씨의 혈압은 200/160을 넘기고 있었다. 루렌도 부부는 네명의 어린 자녀를 돌보느라 본인들이 혹사되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공항 라운지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기에는 쾌적한 곳이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절한 환경이다. 공기는 춥고 건조하며 밤에는 밝은 빛과 소음으로 수면을 유지할 수 없다. 24시간 행인들에게 노출되어 있고 가족의 사생활은 없다. 이런 곳에 사는 것을 우리는 노숙이라고 일컫는다. 성인도 견디기 어려운 노숙생활을 열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 네명이 겪어내고 있다. 공항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은 매우 제한적이며 불균형한 영양섭취가 불가피하다.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이 빵이나 시리얼 따위로 두끼를 때운다. 다들 신선한 채소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나마 지원단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기아 상태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이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꿋꿋이 자라고 있다. 한달에 한번 의료지원을 갈 때마다 조금씩 키가 크고 있는 것이 눈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의 삶은 2018년 12월에 멈추어 있다. 앙골라를 떠난 이후 또래 친구들을 잃은 것은 물론 받아오던 교육도, 즐겨 하던 신체활동도 모두 잃어버렸다. 아이들은 때로는 뛰어놀고 싶지만 공항에서 숨죽여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루렌도 부부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에너지 발산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어느새 소곤소곤 말하는 법에 익숙해져 있다. 큰 소리를 내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조그마한 장난에 까르르 웃다가도 이내 어깨를 움츠린다. 루렌도 가족은 앙골라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콩고 출신이다. 과거 앙골라가 내전에 휩싸였을 때 이웃 나라 콩고로 피난을 갔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현재 앙골라에서 반역자라는 멸시와 차별을 겪으며 수십만명씩 국외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앙골라에서 택시 운전을 하던 루렌도씨는 일반 시민도 아닌 바로 경찰에게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했고 그사이에 아내는 경찰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앙골라의 특수경찰은 국가의 적이라는 자의적인 판단만으로도 시민을 사살할 수 있기에 루렌도 부부는 출국을 서둘렀다고 한다. 가장 빨리 구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국행 비행기였다. 막상 와보니 상륙도 허락하지 않은 한국이지만 이곳에서는 적어도 총에 맞을 걱정은 덜어놓을 수 있었다. 루렌도 부부는 앙골라에서 겪은 일을 아이들은 모르게 하고 싶었지만 난민 신청 불회부 취소를 요구하는 재판 과정에서 아이들도 부부가 겪은 무서운 일을 알게 되었다. 루렌도씨는 네명의 자녀가 인천공항에서의 경험을 길었던 소풍으로 기억하기 바란다고 했다. 아이들이 정말 그렇게 기억할지는 의문이다. 아홉살 레마는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픈 것이나 학교에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앙골라로 돌아가 부모님이 죽을까봐 무서운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루렌도 부부는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결국 이렇게 공항에서 서서히 죽게 되는 것이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있다. 루렌도 가족이 감당하고 있는 스트레스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이들이 난민심사를 받을 자격도 없다고 한다지만 한국에서 8개월째 겪고 있는 일만으로도 이들은 이미 난민이다. 왜 하필 한국을 택해서 이런 고생을 하느냐는 모진 질문 대신 우리나라가 유엔 난민협약 가입국에 걸맞은 난민심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지 자문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이들이 공항에 사실상 구금된 상태로 지내는 한 의학적인 도움이 근본적으로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의사로서 좌절한다. 루렌도 가족에게 정작 필요한 처방은 조용한 보금자리와 햇빛, 그리고 우리나라의 평범한 바깥공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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