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연구원 연구본부장 강남의 집값이 늘 문제인 건 주택 수요는 차고 넘치나 공급이 부족한 데 있다. 한강과 남한산성 등 지형적 한계로 수평적 확장이 불가능하여 주택 공급을 위한 빈 땅 찾기도 쉽지 않다. 같은 시기에 지어진 분당과 일산의 아파트 값에 큰 차이가 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남 지역을 수요가 차고 넘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양질의 일자리, 좋은 학군 등 몇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근본적인 요인은 교통인프라의 강남 집중에 있다. 정부는 지난 수십년간 수백조원을 투입해 강남 지역에 교통인프라를 집중시켰다. 수도권 9개 도시철도 노선 중 7개 노선이 강남 지역을 경유한다. 광역철도인 분당선과 신분당선이 수원·분당 등 수도권 남부지역을 강남 지역과 직접 연결한다. 이외에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철도까지 그야말로 강남은 교통의 요충지다. 철도역도 강남 지역에 몰려 있다. 서울의 금천구, 서대문구, 관악구에는 도시철도역이 3~5개에 불과하나 강남구에는 27개, 송파구와 서초구에는 각각 19개, 15개에 달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강남의 도시철도 접근성이 이들 지역보다 4~5배 높은 것으로 보면 된다.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25개구 522개 행정동 중 통행량이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송파구·서초구 차례이고, 저녁 약속이 가장 많은 20개 행정동 중 11개동이 이들 3개구에 속해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통인프라의 강남 집중을 위한 각종 계획들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수도권 재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 B, C 노선 중 2개 노선의 강남 삼성역 경유는 이미 확정됐고 최근에는 고속철도를 강남의 중심지인 삼성역으로 붙이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가 교통인프라 정책에 대한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수요를 따라가는 것에서 벗어나 국가 전체의 균형발전, 수도권의 균형발전 그리고 서울 내에서의 균형발전을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더 이상의 교통인프라 강남 집중은 막아야 한다. 최근의 고속철도를 강남 삼성역에 연결하자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서울시가 오랜 노력 끝에 이제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서울 부도심 지역의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엄청난 잠재력에 초특급 접근성을 갖춘 강남 삼성역을 두고 영등포, 청량리, 홍대 주변 등에 사람들이 북적거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속철도로 인한 특정 지역의 급격한 발전이 다른 지역에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건 이미 충분히 확인된 사실이다. 1990년 초반에 필자는 ‘고속철도 기술조사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대구역 주변은 지금의 명동과 유사한 곳이었다. 상가는 번창하였고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고속철도 개통 후 불과 15년 만에 상황은 바뀌어 대구역 주변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동대구역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한 대구역 주변은 빈 상가와 허물어진 건물이 수두룩하다. 현재는 ‘도시재생 후보지’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실정이다. 과거에 번창했던 광주역이나 경주역도 고속철도역에 밀려 빠르게 쇠퇴중이다.
왜냐면 |
[왜냐면] 균형발전을 흔드는 교통인프라의 강남 집중 / 성낙문 |
한국교통연구원 연구본부장 강남의 집값이 늘 문제인 건 주택 수요는 차고 넘치나 공급이 부족한 데 있다. 한강과 남한산성 등 지형적 한계로 수평적 확장이 불가능하여 주택 공급을 위한 빈 땅 찾기도 쉽지 않다. 같은 시기에 지어진 분당과 일산의 아파트 값에 큰 차이가 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남 지역을 수요가 차고 넘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양질의 일자리, 좋은 학군 등 몇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근본적인 요인은 교통인프라의 강남 집중에 있다. 정부는 지난 수십년간 수백조원을 투입해 강남 지역에 교통인프라를 집중시켰다. 수도권 9개 도시철도 노선 중 7개 노선이 강남 지역을 경유한다. 광역철도인 분당선과 신분당선이 수원·분당 등 수도권 남부지역을 강남 지역과 직접 연결한다. 이외에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철도까지 그야말로 강남은 교통의 요충지다. 철도역도 강남 지역에 몰려 있다. 서울의 금천구, 서대문구, 관악구에는 도시철도역이 3~5개에 불과하나 강남구에는 27개, 송파구와 서초구에는 각각 19개, 15개에 달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강남의 도시철도 접근성이 이들 지역보다 4~5배 높은 것으로 보면 된다.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25개구 522개 행정동 중 통행량이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송파구·서초구 차례이고, 저녁 약속이 가장 많은 20개 행정동 중 11개동이 이들 3개구에 속해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통인프라의 강남 집중을 위한 각종 계획들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수도권 재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 B, C 노선 중 2개 노선의 강남 삼성역 경유는 이미 확정됐고 최근에는 고속철도를 강남의 중심지인 삼성역으로 붙이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가 교통인프라 정책에 대한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수요를 따라가는 것에서 벗어나 국가 전체의 균형발전, 수도권의 균형발전 그리고 서울 내에서의 균형발전을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더 이상의 교통인프라 강남 집중은 막아야 한다. 최근의 고속철도를 강남 삼성역에 연결하자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서울시가 오랜 노력 끝에 이제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서울 부도심 지역의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엄청난 잠재력에 초특급 접근성을 갖춘 강남 삼성역을 두고 영등포, 청량리, 홍대 주변 등에 사람들이 북적거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속철도로 인한 특정 지역의 급격한 발전이 다른 지역에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건 이미 충분히 확인된 사실이다. 1990년 초반에 필자는 ‘고속철도 기술조사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대구역 주변은 지금의 명동과 유사한 곳이었다. 상가는 번창하였고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고속철도 개통 후 불과 15년 만에 상황은 바뀌어 대구역 주변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동대구역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한 대구역 주변은 빈 상가와 허물어진 건물이 수두룩하다. 현재는 ‘도시재생 후보지’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실정이다. 과거에 번창했던 광주역이나 경주역도 고속철도역에 밀려 빠르게 쇠퇴중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