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하나뿐인 딸아이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대학에서 10년 넘게 재직하면서 내가 살고 있고 가르치는 곳의 삶의 조건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딸아이와 더 오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지역의 국립대 입학을 고민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역시 결론은 서울행이었다. 동료교수들이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조심스럽게 서울로 보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자신이 재직 중인 대학에 자녀를 보낼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정년 후 서울로 가기 위해 수도권에 집을 남겨두고 온 결정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올해는 딸아이와 나이가 같은 신입생들을 가르치게 되어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부모 심정이 되다보니 괜한 걱정이 많아지기도 했다. 특히 집을 떠나온 아이들이 기숙사 생활은 잘 할지,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대학 공부를 잘 마치고 취직까지 무사히 할 수 있을지 염려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 대학의 경우 외부 압력이 들어오기도 전에 때이른 학과 구조조정을 하여 인문학 관련 학과는 남아 있지 않다. 실용적이고 자격증 중심의 학과를 운영하고 있어서인지 취업률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전공한 불문학의 경우는 대학 구조조정의 여파 속에서 국립대학을 제외하고 폐과됐거나 몇년 뒤의 생존을 보장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지역에서도 인문학 관련 학과가 있어야 하고 학문의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는 지역 대학의 현실이 어둡기만 하다. 인구 감소로 대학 정원을 채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주장이 사치스럽다는 것은 대학의 교수들조차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문학 관련 학과의 경우 교수들의 정년이 멀지 않을수록 폐과에 대한 내부 저항이 적은 것을 보면 ‘나까지만’이라는 심리가 대학 사회에 팽배해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지역 대학 교수들이 직면에 있는 어려움은 다양하다. 우선 입시와 취업에 매달리다보니 논문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공계의 경우 대학원생이 적고 실험실 여건도 좋지 않다보니 연구하고 논문 쓰는 일이 쉽지 않다. 책만 있으면 공부할 수 있는 학과의 교수들도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살다보면 학문적 업적에 비해 그 성과가 사회적인 주목을 끌기 어렵고 하다못해 방송 인터뷰 기회도 수월치 않다. 나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는 열의가 남아서인지 한달에 한번 서울 나들이를 가서 학회며 출판사를 다니며 최근의 관심사를 설명한다. 물론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다. 서른이 다 돼서 간 군대에서 훈련 중에 ‘장교는 각자 책임’이라는 훈육관의 말을 수차례 듣곤 했는데 지역 대학의 교수도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나보다. 학기 초 대학 신입생들을 만나면 한 학기에 세번은 서울에 가서 다른 학교 친구도 만나고 전시회에도 다녀오라고 조언한다. 방학 때는 외국에 꼭 다녀오라고 권유한다. 지역에 살면서 꿈의 크기도 작아지고 문화체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다. 한편으로는 지역 대학 학생들의 길이 따로 있고 모든 사람들이 큰 꿈을 꿀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역 명문대가 사라지고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자신이 재직 중인 대학을 생계를 위한 터전만으로 여겨본 적은 없다. 아직 젊어서인지 눈에 띄는 글을 써낸 학생들을 불러 격려하고 묻지도 않은 진로를 조언하며 졸업 후에 안부를 묻기도 한다. 우리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면서 지역 대학의 생존은 대학이 지역의 문화, 경제, 교육의 중심이 되는 서구의 ‘대학도시 모델’에 달려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생존과 상생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대학의 미래를 꿈꾸어본다.
왜냐면 |
[왜냐면] 지역대학에서 교수로 살아가기 / 박아르마 |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하나뿐인 딸아이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대학에서 10년 넘게 재직하면서 내가 살고 있고 가르치는 곳의 삶의 조건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딸아이와 더 오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지역의 국립대 입학을 고민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역시 결론은 서울행이었다. 동료교수들이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조심스럽게 서울로 보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자신이 재직 중인 대학에 자녀를 보낼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정년 후 서울로 가기 위해 수도권에 집을 남겨두고 온 결정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올해는 딸아이와 나이가 같은 신입생들을 가르치게 되어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부모 심정이 되다보니 괜한 걱정이 많아지기도 했다. 특히 집을 떠나온 아이들이 기숙사 생활은 잘 할지,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대학 공부를 잘 마치고 취직까지 무사히 할 수 있을지 염려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 대학의 경우 외부 압력이 들어오기도 전에 때이른 학과 구조조정을 하여 인문학 관련 학과는 남아 있지 않다. 실용적이고 자격증 중심의 학과를 운영하고 있어서인지 취업률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전공한 불문학의 경우는 대학 구조조정의 여파 속에서 국립대학을 제외하고 폐과됐거나 몇년 뒤의 생존을 보장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지역에서도 인문학 관련 학과가 있어야 하고 학문의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는 지역 대학의 현실이 어둡기만 하다. 인구 감소로 대학 정원을 채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주장이 사치스럽다는 것은 대학의 교수들조차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문학 관련 학과의 경우 교수들의 정년이 멀지 않을수록 폐과에 대한 내부 저항이 적은 것을 보면 ‘나까지만’이라는 심리가 대학 사회에 팽배해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지역 대학 교수들이 직면에 있는 어려움은 다양하다. 우선 입시와 취업에 매달리다보니 논문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공계의 경우 대학원생이 적고 실험실 여건도 좋지 않다보니 연구하고 논문 쓰는 일이 쉽지 않다. 책만 있으면 공부할 수 있는 학과의 교수들도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살다보면 학문적 업적에 비해 그 성과가 사회적인 주목을 끌기 어렵고 하다못해 방송 인터뷰 기회도 수월치 않다. 나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는 열의가 남아서인지 한달에 한번 서울 나들이를 가서 학회며 출판사를 다니며 최근의 관심사를 설명한다. 물론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다. 서른이 다 돼서 간 군대에서 훈련 중에 ‘장교는 각자 책임’이라는 훈육관의 말을 수차례 듣곤 했는데 지역 대학의 교수도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나보다. 학기 초 대학 신입생들을 만나면 한 학기에 세번은 서울에 가서 다른 학교 친구도 만나고 전시회에도 다녀오라고 조언한다. 방학 때는 외국에 꼭 다녀오라고 권유한다. 지역에 살면서 꿈의 크기도 작아지고 문화체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다. 한편으로는 지역 대학 학생들의 길이 따로 있고 모든 사람들이 큰 꿈을 꿀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역 명문대가 사라지고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자신이 재직 중인 대학을 생계를 위한 터전만으로 여겨본 적은 없다. 아직 젊어서인지 눈에 띄는 글을 써낸 학생들을 불러 격려하고 묻지도 않은 진로를 조언하며 졸업 후에 안부를 묻기도 한다. 우리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면서 지역 대학의 생존은 대학이 지역의 문화, 경제, 교육의 중심이 되는 서구의 ‘대학도시 모델’에 달려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생존과 상생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대학의 미래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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