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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9 18:11 수정 : 2019.07.30 15:39

최나욱

<클럽 아레나> 저자

시각문화연구자 장피에르 고랭은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비밀 세미나를 진행한 바 있다. 비밀이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세미나의 조건 때문이었다. 다양한 인종, 국적, 성별 등으로 이루어진 구성원에게 ‘일련의 정체성에 대한 금기를 공격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예컨대 ‘동양인은 보통 어떠하다’ ‘여성은 보통 어떠하다’와 같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지만, 그만큼 공공연한 선입견을 입 밖에 꺼내도록 한 일이었다. 무조건 사회적 금기를 조심하거나 회피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금기를 인정하고 공론화하는 것이 현실을 더욱 정확히 바라보고 나아가게 할 수 있지 않냐는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지난해 <클럽 아레나>를 쓴 의도 중 하나이기도 했다. 클럽은 지금 시대의 대표적인 유흥 공간으로 늘 나쁜 것으로 치부되어왔는데, 막상 그 안에서 나타나는 금기를 살펴보면 일상과 무관하지 않았다. 외모에 따라 입장 자체를 제한하는 외모지상주의, 옷과 차 등을 사고자 빚을 지는 순간지향적 소비, 돈을 뿌리며 노는 황금만능주의적 쾌락, 일상의 남녀 갈등과 전혀 다른 온도 차의 남녀 관계 등. 극단성만 빼고 본다면 클럽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지만 차마 말할 수 없는 것, 그만큼 논쟁적인 것을 함축하는 장소였다. 일탈이란 본질적으로 일상에 대응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면서도 “그곳에 가면 정말 그런가요?” 혹은 “이 차림으로 입장이 가능한가요”를 묻곤 한다.

그러나 상반기 ‘버닝썬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런 논의는 무용해졌다. 설마 수사가 이처럼 조용히 마무리될 줄, 여론의 관심이 오직 연예인의 가십과 자극적인 음담패설뿐이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대신 추악한 사건이 밝혀질 때조차 사람들이 더욱 자극적인 가십만을 찾는 것을 보며, 이조차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클럽 아레나>에서 패션을 이야기하는 장에 대한 반응마저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는 여기에서 달라진 소비문화와 명품 브랜드 전략을 살폈지만, 많은 이들은 ‘비싼 옷은 나쁜 것’이라며 절대적인 선악 구도로 나누었던 것이다. 유흥 공간의 극단성은 사회적 논의뿐 아니라 문화적인 트렌드에도 영향을 주며 시사점을 던지는데, 선입견 앞에서 이 모두는 버려지거나 가십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같은 소재를 이야기하는 탓일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람들은 한층 가까워져 비슷한 욕망을 품고 비슷한 주제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지만, 그것은 되레 사람들이 실제 살아가는 환경의 차이를 떠올리게 한다. 이해는커녕 일차원적인 자랑과 허영, 눈치와 시샘이 전부일 따름이다. 오늘날 클럽에서 취하는 공간 전략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이상 과거 유흥 공간에서 방을 만들듯 공간을 구획하지 않고, 고액 손님과 무료 손님을 한데 모아 서로를 의식하도록 부추기는 것 말이다. 남녀 관계 등 다른 극단적 모습에서도 모종의 익숙함이 있듯, 재벌이나 연예인, 회사원, 대학생까지 한데 모여 자랑하고 시샘하는 시선 역시 낯설지 않다.

끊임없는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이 때문인 것 같다. 필요한 논의는 금기로 입막음하고,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선 편견으로 재단하는 것 말이다. 유흥 공간 전체를 절대악으로 단정 지으며 정작 단죄해야 할 잘못을 모호하게 하고, 실상을 밝히기보다 흥미에 기반한 추측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은 어디에 연유할까. 무슨 일이 터지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들끓다가도, 머지않아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배타화하고 유희화하는 게 더 문제 아닐까. 때로는 우리 일처럼 걱정했다가, 때로는 남의 일처럼 손가락질만 하고 끝맺은 클럽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사회상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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