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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0 17:41 수정 : 2019.07.11 14:21

정연길
한국전력 사외이사·창원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수도요금,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은 원가가 늘어나는 데에 따라 요금이 늘어나고, 소비자들이 쓰는 양에 따라 요금을 낸다. 그런데 유독 전기요금은 원가와 관계없이 요금이 책정되고, 쓰는 양에 따라 요금을 내는 게 아니라 누진제가 적용된다. 또 각종 복지정책이 요금제도에 반영돼 있어 전기요금제는 한마디로 누더기라 할 수 있다.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 복지정책, 농어민에 대한 저가요금제 같은 복지 차원의 정책은 요금체계와는 별개로 다루어져야 하고, 일반 요금제도에서는 사용한 만큼 내는 것이 공평하다.

지난달 28일 한국전력 이사회가 하계 누진제 완화 결정과 더불어 전기요금개편(안)을 11월에 마련하고 내년 상반기 중에는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의결했다. 요금제 개편 내용은 첫째,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원가 이하의 요금제를 개선하고, 둘째, 좀더 공평한 방식으로 현행 누진제를 개편하겠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그리고 요금과 복지의 문제는 별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은 요금체계에서 복지정책을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별도로 에너지 복지와 전력산업 발전을 위해 전기요금의 3.7%를 전력산업기반기금에 주고 있다. 매년 내는 기금액이 2조3천억원 정도이며, 다른 목적사업에 사용하고 남는 여유 재원이 매년 4천억~6천억원 수준이다. 누적된 여유자금이 2018년 말 기준으로 4조2천억원 정도 있다. 이런 미사용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에너지 복지정책에 추가로 활용할 수 있다.

요금제에 복지의 내용을 함께 담다 보면 사실상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할 계층이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엉뚱하게 이득을 보는 계층이 생긴다. 대표적인 예로 필수사용량 보장공제제도가 있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현재 1단계(0~200㎾h) 사용자에게 최대 4천원을 할인해주는 제도다. 전기사용량이 적은 고소득 1인 가구에도 4천원의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왜곡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도 상품이며, 시장경제에서 상품의 가격은 일률적인 게 좋다. 그러나 한편으로 통신요금처럼 소비자가 자신의 사용 패턴에 따라 다양한 요금제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가급적이면 전기 사용을 아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있고, 일률적으로 누진제를 폐지하고 단일요금을 실시하는 것보다 국민들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서 요금제에 대한 수용성을 높일 수도 있다. 가령 월 기본요금 2만원에 200㎾h까지 무제한 사용하고 추가되면 ㎾h당 200원의 요금을 내거나 무조건 사용하는 대로 ㎾h당 150원의 요금을 내는 걸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문제는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으로 어느 한 측면만 보고 해결할 수 없다. 1974년 유가 폭등으로 시작된 누진제는 현시점에는 맞지 않는다. 여름철에 국민들이 안심하고 냉방기를 쓸 수 있도록 만든 하계 누진제 완화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당면한 문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수준의 처방책이다. 이런 이유로 한전 이사회는 좀더 근본적인 요금제 개편(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게 된 것이다.

한가지 원칙만 분명하게 하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수익자 부담에 따른 요금제를 만들고, 에너지 복지와 요금제도를 분리하자. 한전은 공기업으로서 에너지 복지를 위한 기금에 기꺼이 출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복지적 지출은 요금제와 분리해 별도로 계산하고 실제 혜택을 주고자 하는 대상에게 확실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전은 온 국민이 고객인 독점기업으로서 국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이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상장기업으로서 투자자의 요구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모처럼 공기업 이사회가 고객과 투자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계기로, 전기요금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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