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6.26 17:48 수정 : 2019.06.26 19:59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

지난 24일 한국수력원자력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라카 원전 정비계약과 관련해 국내 일부 언론은 일제히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정비계약이 반토막 났다”며 성토하고 나섰다. 이들은 원자력계 인사들의 인터뷰를 근거로 삼았다. 애초 15년의 일괄수주를 전망했지만 탈원전 정책 때문에 5년 단위 ‘쪼개기’ 계약을 하게 되면서 계약금액도 반토막이 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국내 원자력계가 자초한 문제를 정부 탓으로 돌리는 적반하장식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바라카 원전의 한국형 모델인 신고리 3, 4호기는 2013년 불거진 품질보증서 위조, 불량 케이블 사태로 준공연도가 3년씩 연기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예정됐던 1800명에 이르는 바라카 원전 운영인력의 신고리 실습훈련도 줄줄이 미뤄졌다. 운영인력의 미숙련 문제에다가 신고리에 사용된 불량 부품이 바라카에도 공급된 사실까지 밝혀지며 현지 당국자들은 분노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안전규제당국(FANR)은 애초 2017년 초로 예상됐던 바라카 1호기 운영허가를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한국 원전업계의 부품설비 공급망 전반에 대한 현지 규제당국의 불신을 초래했으며, 현재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외국 원전업계의 전언이다. 여기에 더해 한수원과 한국전력 파견직원들의 음주운전과 폭언, 의사소통 문제 등은 현지 당국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신고리 원전 비리로 바라카 원전 4기 모두 3년씩 가동이 지연된 이 초유의 사태는 최소 3조원대의 막대한 영업손실을 일으킨 것이었다. 세부 계약을 떠나 아랍에미리트연합 쪽이 한국에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 사태 이후 원전정비를 한국에 일괄발주할 경우 안전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규제당국이 바라카 원전 운영사인 나와에너지에 정비의 책임을 맡긴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에 나와에너지는 지난 5월 미국 원자력계의 유력인사를 원전부문 최고경영자로 영입해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자체적인 원전기술 역량과 지체된 바라카 원전 운영허가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무엇보다 ‘쪼개기’ 정비계약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아랍에미리트연합 정부는 바라카 원전 발주 당시 향후 10여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신고리 부품 비리, 바라카 운영허가 지연, 재생에너지 가격인하 등을 경험하며 에너지계획에서 원전 증설을 제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7년 1월에 이미 ‘에너지전략 2050’을 통해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와 가스의 전력공급 비중을 각각 44%, 38%, 원전 비중은 불과 6%로 제시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바라카 원전 이후 원전 건설 계획이 없음을 공표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동지연 손실분이 제외된 2016년 현지 투자분석기관의 바라카 원전 발전비용 평가액만 ㎾h당 7.1센트(약 81원)였지만, 두바이와 아부다비에서 최근 준공됐거나 1년 내 준공 예정인 약 2.4GW(영광원전 2.4기분) 태양광설비들의 발전비용은 그 절반 이하인 2~3센트에 그친다.

따라서 국내 원자력계의 애초 희망과 달리 축소된 바라카 원전 정비계약은 한국 원전업계 비리로 인한 신뢰도 추락, 현지 재생에너지와의 가격경쟁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쪼개기’ 정비계약은 경쟁을 통해 한국 의존도와 원전 발전비용을 모두 줄이겠다는 상대국의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모든 문제를 정부 탓으로 돌리려는 원자력계와 보수 언론의 태도는 후안무치하다.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