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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0 16:11 수정 : 2019.06.10 19:24

지난 4월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4월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5월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에서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논의를 계기로 ‘교육부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느닷없는 주장이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지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것인데다, 심지어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협의한 사안이기도 하다.

이 주장이 나온 이유나 배경에 관해서는 길고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 폐지 주장에 대해 교육부가 “대학 의사결정 구조를 교수회에서 직원과 학생이 참여하는 평의회 중심으로 바꾼 데 따른 반발”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반응이 현재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학 의사결정 구조를 교수회에서 직원과 학생이 참여하는 평의회 중심으로 바꿨다”는 교육부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고등교육법 제15조는 “총장 또는 학장은 교무(校務)를 총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감독하며, 학생을 지도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을 교육부는 대학 경영에 관하여 총장 1인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총장 독임제’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왔다. 그리고 각 대학 학교 규칙에 총장의 이런 ‘의사결정 권한’을 침해한다고 교육부가 판단하는 장치나 절차를 설치하는 경우, 그것을 위법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에는 온갖 행·재정 수단을 자의적으로 동원해서 폐기하거나 무력화해왔다. 교육부는 그동안 앞장서서 대학의 ‘총장 독재’를 보위해왔다. 그래서 대학의 의사결정은 교육부 주장과 달리 ‘교수회’가 아니라 ‘총장’이 독점해왔으며, 대학의 권력을 독점한 총장에 대해서는 심지어 학칙을 위반하더라도 제재할 장치가 없게 돼 있다.

그런데 ‘총장은 교무를 총괄한다’는 희한한 법조항의 원형은, 일본이 조선을 병탄한 직후인 1910년 10월1일 공포한 일본 칙령 제354호 ‘조선총독부 관제’ 제1조 “조선총독부에 조선총독을 둔다. 총독은 조선을 관할한다”에 있다. 아무런 단서나 제한도 없는 이 조항은 조선총독에게 조선에 관한 모든 일을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전횡할 수 있는 독재권력을 부여하였다. 조선총독은 오로지 임명권자인 일왕에게만 복종하면 되었다. 조선총독과 그 수하들이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식민지 조선을 마구 유린하고 수탈한 법적 기초가 바로 이것이었다.

교육부가 ‘총괄한다’는 막연하고 조악한 법조문을 핑계로 총장 독재를 강압한 의도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교육부는 총장에게 무소불위의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집중시키고 그 총장을 장악하여 대학을 식민지로 관할하려 했고, 실제로 관할해왔다. 일제 식민통치와 차이가 있다면, 재정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돈다발’을 흔들어 총장들을 순치시킨 점일 것이다. 이 때문에 총장들은 교육부 눈치를 보며 대학 황폐화 정책의 마름 노릇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학문 자유나 대학 자율이라는 가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현 정부 초기에는 교육부가 달라지는 듯했으나 1년여가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예전으로 돌아가 대학에 대한 식민통치적 횡포를 서슴지 않고 있다. ‘교수(회)가 대학의 의사를 결정했다’는 태연한 거짓말조차, 사실을 왜곡하여 문제의 초점을 흐리던 예전 모습 그대로다. 지금껏 교육부는 ‘대학 선진화 정책’을 비롯한 온갖 터무니없는 정책들을 입안하고 집행하면서, 그 오류에 대해 반성은커녕 평가조차 받은 일이 없다. 그러니 구태를 되풀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국공립대 교수들이 ‘교육부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반성을 모르는 교육부가 혁신으로는 청산할 수 없는 적폐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교육부의 식민통치가 있는 한 대학의 역량 강화와 학문 발전은 꿈조차 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기홍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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