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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05 16:32 수정 : 2019.06.05 19:09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3년 전 5월28일 서울 구의역에서 19살 김군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사망했다. 그 소식은 그의 가방 속 컵라면 사진과 함께 언론을 타고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누군가 처음 붙인 포스트잇은 수십장이 되고 수백, 수천장이 되어 구의역 전체를 추모의 장으로 만들었다. 미안함과 사회의 무책임과 분노, 슬픔이 뒤섞여 그가 죽어간 곳을 감쌌다. 그의 죽음을 통해 깨달았다. 추모가 가진 힘이 정책을 움직였고 정치인들을 움직였다. 다시는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가 죽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산재 사망을 사전에 미리 막을 수는 없을까. 진부한 질문이지만 끊임없이 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해마다 2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죽으니 2천번 곱하기 100번을 이야기하더라도 부족한 노릇이다. 추락이나 끼임이 사망 원인의 압도적 1위를 차지한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사람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를 물어보아야 하는 지경이다. 정부에서도 추락 사고에 주안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시민단체인 ‘노동건강연대’는 2018년에 노동자 사망이 언론에 얼마나 보도되었는지를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총 835건의 사망 중 600건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전체 사망 건수의 70% 정도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알고 있는 죽음은 30%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만들어내야 한다. 산재 사망이 발생하지 않는 기업을 칭찬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빠를 수도 있다.

근래에는 대기업이 위험을 외주화해 두고 각종 혜택을 보고 있으니(산재보험료 몇백억 감면 등) 반드시 줄줄이 엮인 하청업체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일자리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 언론은 노동자 사망을 더 많이 취재·보도하고, 기자들이 미처 모르는 소식들도 있으니 주변에서도 제보를 많이 해야 한다. 노동 현장을 잘 모르는 경찰보다는 고용노동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사망한 이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사람의 세상은 어땠는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정부는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기업을 매달 혹은 매일 공개해야 한다. 위험한 기업이니 접근금지 명령도 내리자. 법원은 기업이 그럴 수도 있다며 사람이 죽어도 벌금 1천만원을 부과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젠 살인죄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노동자가 죽으면 기업이 망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사는 유권자를 살린다는 취지로 위험 기업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국가에서 하는 발주사업엔 참여하지 못하게 하자. 지방자치단체는 위험한 기업에 일을 맡기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나 할 일이 많다. 포스트잇에 적힌 우리의 반성과 절망을 현실에 숨 쉬게 하자. 아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의역에서, 태안화력에서의 경험을 소중히 다루어 전국에 퍼지도록 하자. 우리의 일상을 지켜주는 시도를 주저할 이유가 무엇인가.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일을 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언젠가는 사람이 일하다가 죽는 일이 이상한 일이 되도록 만들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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