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산초등학교 교장 지난달 2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자유 제한은 인권침해라며, 국회에 관련법들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교사의 정치적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지금까지 4차례의 권고가 있었는데도 변한 것은 없다. 학교에서 교원은 우리나라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헌법 제31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근거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은 견고하게 제한돼 있다.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은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좋아요’나 ‘싫어요’를 표시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운 처지다. 이를 어기면 범법자가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원은 정치적으로 어떠한 선택이나 행동을 표방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 교원들이 정치적 중립 상태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 상황이라기보다 무정치나 반정치 상황에 빠져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달리 표현하면 교원은 정치적 심신상실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적 금치산자다.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교사가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거나 거부하도록 가르쳐서, 왜곡된 영향을 끼칠 것이라 걱정한다. 한마디로 기우다. 만약 교원이 편파적인 정치적 성향을 학생에게 주입한다면, 당장에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와 학생들의 거부감이 표출될 것이고, 사회적 비난도 따를 수 있다. 그로 인한 파장을 개별 교원이 견디기는 힘들 것이다. 게다가 왜곡된 정치적 상황이나 내용을 걸러내지 못할 정도로 우리나라 교원, 학부모, 학생, 시민들의 정치적 수준은 낮지 않다. 대한민국은 촛불혁명을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나라다. 게다가 만 18살 이상 학생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자는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때에, 교원들이 정치적으로 금치산자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생각해볼 문제다. 과거에 교육이 정치에 휘둘렸을 때 교육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중립이 필요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온 적이 많았다. 최근 국정교과서 파동을 상기해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무용했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오늘날 교원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민주주의와 민주시민 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격이다. 이제라도 헌법 제31조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폐지까지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최소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학교 일과 중 정치적 활동을 한다거나 학생들에게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념을 가르치는 것은 제한되어야 마땅하다. 교원이 퇴근 후나 학교 밖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고, 정당 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에서 보듯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 더는 이러한 비극이 없도록 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학교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한 바탕으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부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왜냐면 |
[왜냐면] 정치적 금치산자인 교원이 민주주의 가르치는 나라 / 이문수 |
서울남산초등학교 교장 지난달 2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자유 제한은 인권침해라며, 국회에 관련법들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교사의 정치적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지금까지 4차례의 권고가 있었는데도 변한 것은 없다. 학교에서 교원은 우리나라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헌법 제31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근거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은 견고하게 제한돼 있다.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은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좋아요’나 ‘싫어요’를 표시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운 처지다. 이를 어기면 범법자가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원은 정치적으로 어떠한 선택이나 행동을 표방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 교원들이 정치적 중립 상태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 상황이라기보다 무정치나 반정치 상황에 빠져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달리 표현하면 교원은 정치적 심신상실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적 금치산자다.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교사가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거나 거부하도록 가르쳐서, 왜곡된 영향을 끼칠 것이라 걱정한다. 한마디로 기우다. 만약 교원이 편파적인 정치적 성향을 학생에게 주입한다면, 당장에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와 학생들의 거부감이 표출될 것이고, 사회적 비난도 따를 수 있다. 그로 인한 파장을 개별 교원이 견디기는 힘들 것이다. 게다가 왜곡된 정치적 상황이나 내용을 걸러내지 못할 정도로 우리나라 교원, 학부모, 학생, 시민들의 정치적 수준은 낮지 않다. 대한민국은 촛불혁명을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나라다. 게다가 만 18살 이상 학생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자는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때에, 교원들이 정치적으로 금치산자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생각해볼 문제다. 과거에 교육이 정치에 휘둘렸을 때 교육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중립이 필요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온 적이 많았다. 최근 국정교과서 파동을 상기해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무용했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오늘날 교원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민주주의와 민주시민 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격이다. 이제라도 헌법 제31조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폐지까지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최소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학교 일과 중 정치적 활동을 한다거나 학생들에게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념을 가르치는 것은 제한되어야 마땅하다. 교원이 퇴근 후나 학교 밖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고, 정당 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에서 보듯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 더는 이러한 비극이 없도록 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학교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한 바탕으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부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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