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7 17:09
수정 : 2019.05.2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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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변호사시험이 시행된 2016년 1월 서울 중앙대학교 시험실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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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로스쿨 제도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과 로스쿨 정원, 응시 자격 제한이라는 겹겹의 제한을 두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제도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배려한 결과로 보인다. 반면 변호사의 충분한 공급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공익에 대한 요구는 외면하게 됐다. 따라서 로스쿨 제도는 공공의 이익과 상식적 합리성을 기준으로 개혁될 필요가 있다.
변호사 숫자는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늘어나야 한다. 일정한 자질을 갖추었다면 숫자가 얼마가 되든지 모두 변호사 자격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자격 획득은 객관적 결과로 드러난 시험 성적이 기준이 되어야 하며, 로스쿨 교육만 이수하면 자격을 보장하는 특권적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상식적이지 않은 주장은, 법조인 양성을 위해 대학원 과정의 법학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변호사 시험의 낮은 합격률 때문에 로스쿨 교육이 수험 법학으로 회귀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 온전히 타당하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매우 이상해 보이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법시험 문제에 훌륭한 답안을 작성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도 법리 이해나 법률 해석에 있어 자질이 부족할 수 있다. 그리고 부족한 자질은 로스쿨 교육을 통해서만 갖출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법시험 합격자보다 더 적게 공부하고 더 적게 암기해야 한다. 로스쿨 졸업생은 더 적게 공부하고 암기했음에도 사법시험 합격자보다 더 나은 실무 능력까지도 갖출 수 있다.
본인이 과문한 탓이겠으나, 이처럼 상식을 벗어나는 전제가 진실일 수는 없다. 물론 법학에는 단순 암기로는 습득할 수 없는 나름의 심오한 이론 체계가 존재한다. 좋은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심오한 부분에 대한 학문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만약 시험이 그런 자질을 검증하는 데 실패했다면, 출제와 채점 기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므로 그것을 조정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 나름의 심오함을 고려하더라도 법률학이란 도덕 철학의 응용분야일 뿐이어서 회의(懷疑)와 논증의 수준이 제한적이다. 판결의 기초가 되는 가치판단에 관한 이해는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식적 정의 관념에 근거한 것이며, 또한 그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좋은 해설을 통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대학원 과정을 통해서만 제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법조인 배출에서 로스쿨이 갖는 독점적 지위는 합리적 근거가 없다.
로스쿨의 역할과 목표는 합리적으로 다시 설정될 필요가 있다. 로스쿨의 필요성에 관해 지식인 사회가 좀 더 실용적이고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 로스쿨 제도의 진정한 효용은, 일정한 자질을 갖춘 이들에게 검증된 교육 과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경로를 보장해주는 데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법조인 지망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엘리트 교육이나 사회 경력자들에 대한 재교육 수요에 부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로스쿨 도입 당시의 명분은 이제 부메랑으로 돌아와 교육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있다. 로스쿨로서도 특권적 지위를 포기하는 대신 선발과 교육에서의 자율성이라는 반대급부를 얻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전문적 역량이 총동원된 경쟁을 통해 성과를 냄으로써 그 효용을 입증해 보이라는 것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요구로 보인다. 이른바 ‘고시낭인’ 문제는 변호사 숫자의 증가로 자격증이 신분 상승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다. 학부와 같은 교양교육기관도 아니며 학술연구기관도 아닌 직업교육기관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
고종한
직장인·경기도 고양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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