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0 16:47
수정 : 2019.05.2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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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0일, 제주도에서 개최된 바다식목일 기념 행사에서 윤진숙 전 해수부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해양수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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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해양수산부 주관으로 2012년부터 해마다 5월10일을 법정기념일인 ‘바다식목일’로 정하여 바다숲 가꾸기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숲은 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나라 바다에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바다에서 자라는 나무는 열대지방 해안가에 있는 맹그로브가 유일한데 이걸 제외하면 바다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모든 식물은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나무는 줄기 목질이 발달하여 수십년 생존할 수 있으나 풀은 목질이 불량하여 줄기가 연하고 수명은 몇년 이하이다.
‘바다식목일’이니 ‘바다숲’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정부에서 쓰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물론 미국에서도 ‘바다숲’(maritime forest)이라는 말을 쓰지만 어디까지나 하구 주변 등 해안선에서 자라는 육상 나무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물론 사람들이 바다를 잘 모르니 알기 쉽게 하려는 비유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2500년 전 이미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이라고 하였다. 잘못된 이름은 어린 학생들에게 거짓 정보를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된 정부 정책까지 눈속임으로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사람들은 바다를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 바다는 어둡고 깊어 눈으로 보기도 들어가기도 극히 힘든 곳이기 때문에 온갖 거짓이 쉽게 먹힐 수 있는 곳이다.
해양수산부에서 바다숲 조성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우리나라 연안 바위에 석회조류가 대량 번식하면서 해조류가 급격히 줄어드는 ‘갯녹음 현상’ 확산이었다. 땅에서 숲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짐승과 새들이 살 수 있는 서식지가 생기듯이 바다에도 바다숲을 조성하면 수산자원인 물고기들이 잘 살 수 있게 되어 어족자원이 증가하고 어민 소득도 증대시킬 수 있으리라 보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약 2만㏊에 이르는 바다숲을 만들었으며, 2030년까지는 여의도 면적의 64배인 5만4천㏊까지 확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올해는 국회에서 바다숲 사업 10주년을 맞아 ‘바다숲 조성계획’ 수립과 시행을 법제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육지처럼 사람들이 나무를 많이 베어버린 경우라면 식목일을 기념하면서 나무를 많이 심어주면 수십년이 지나 숲이 조성될 수 있다. 우리나라 나무심기 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성공적인 사례이다.
그렇다면 바다에서도 바다풀이 줄어든 주원인이 육지처럼 사람들이 풀을 많이 뽑거나 뜯어 갔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세계적으로 연안 바다풀이 줄어드는 이유는 오염이나 기후변화를 비롯한 바다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양수산부에서는 돌팔이 의사가 병명도 모르면서 처방부터 내놓듯 바다풀이나 수산자원 감소 원인도 모르면서 회복부터 시키겠다는 정책들을 펴왔다.
나무를 심어 바다숲을 조성한다면서 실상은 바다풀을 따닥따닥 붙인 온갖 콘크리트 구조물을 해안가 바위 등에 붙이는 일들을 1천억원 단위 국민 혈세를 들여가면서 해왔다. 해양환경이 이미 나빠졌는데 어떻게 바위에 붙여놓은 바다풀이 몇년 이상 생존하여 다시 번식할 수 있겠는가? 이미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30년 전에 시도했지만 실패하였으며, 그나마 바다풀 씨를 직접 뿌려 바뀐 새 환경에 살아남아 번식할 수 있는 종을 선별해볼 것을 권장하고 있다.
바다풀을 회복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다식목일’과 같은 잘못된 이름부터 바로잡아 해양환경 변화나 오염, 기후변화와 같은 감소 원인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다음으로, 시일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바다풀 감소 원인을 정확히 밝힌 뒤 개선이나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원인도 모른 채 처방만 내리는 관행을 중단하길 바란다.
정석근
제주대 해양의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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