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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14 15:47 수정 : 2019.05.14 18:51

픽셀하우스 제공

1970년 봄, 서울시의 새 도시계획국장이 된 손정목은 향후 업무 방향을 협의하기 위해 부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 석상에서 그는 도시계획상 중점 고려사항으로 주차장 부지 확보를 제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시계획은 100년 뒤를 내다보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앞으로 20년 안에 마이카시대가 열립니다. 자동차 한대당 두개씩의 주차장이 필요하니, 서울시내에 차량이 100만대가 될 걸 가정해서 200만대분의 주차장 부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30년 넘는 세월이 흐른 뒤, 그는 그때 자기의 선견지명에 동의한 직원이 한명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직원들과 시장이 자기 말을 들었더라면 서울시의 주차난은 훨씬 덜했을 거라고. 하지만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 직원들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서울시민 1인당 실거주면적이 1평이 조금 넘던 때였으니, 차 한대당 4평 정도, 400만평의 땅을 주차장 용도로 확보하는 건 몽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말이든 가마든 탈것을 이용하려면 출발지와 목적지에 한개씩의 보관 장소나 시설을 갖춰야 한다. 조선시대 서울의 대가(大家)들에도 가마 보관소와 마구간이 구비되어 있었다. 자가용 승용차 출현 이후 반세기 정도까지는, 주차 문제가 도시 문제의 하나로 취급되지 않았다. 자기 집에 차고를 설치할 정도의 재력도 없으면서 자가용 승용차를 구매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 자가용 승용차가 해마다 급증하면서, 전국 모든 도시가 주차 문제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주차 문제는 한동네 주민 사이의 분쟁을 유발했고 도심부 재래시장과 작은 가게들의 상권을 위축시켰으며, 지하 공간 개발을 부추겼다. 이 문제로 인해 수많은 도시 주민이 ‘불법행위’ 통지를 받고 과태료를 납부했다.

자가용 승용차는 인간이 이용하는 기계 가운데 가장 비효율적인 편에 속한다. 하루 평균 22시간 이상 일정 공간을 점유한 채 멈춰 있는 산업용 기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조만간 도래할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에는 승용차를 직접 소유하려는 욕망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주차장을 늘리는 데 몰두해온 지난 30년의 관성도 바뀔지 모를 일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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