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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13 17:02 수정 : 2019.05.13 18:55

조현병을 앓고 있는 안아무개씨에 의해 이웃 주민들이 숨진 현장인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 출입구에 지난달 21일 국화꽃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를 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자행하여 5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묻지마 사건”이라고 언론들은 속보를 발표했다. 피의자의 조현병 병력이 드러나니 “조현병 환자가 일으킨 묻지마 사건”이 되었다. 그런데 피의자가 과거 1년 동안 지속적으로 피해자들을 해치려는 시도가 발견되며 “계획된 범죄”로 이 사건은 이름을 바꾸었다.

과연 조현병이 사건의 원인일까? 조현병과 일부 정신질환 환자들은 ‘정신병적 급성기 증상’을 겪는다. 이 증상을 겪을 경우에 인지기능의 손상이 일시적으로 일어나며 폭력성이 과도하게 높아지기도 한다. 만약 폭력사건이 이 증상이 나타날 때 발생했다면 조현병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인과관계를 주장할 수 있다. 문제는 피의자가 계획을 세우고, 방화를 하고, 흉기를 20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휘두른 이 사건은 일시적으로 손상된 인지기능을 경험하는 환자가 했다고 믿기 어렵다. 경찰은 피해망상이 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망상이란 것이 조현병 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히 빈번하게 발견된다.

영국에서 페치와 핼리건 교수가 2000년대 후반에 RDD(무작위 표본추출) 방식으로 1000명을 대상으로 망상수준을 조사했다. 그랬더니 “당신은 다른사람에게 조정 당하고 있습니다”와 “어떤 사람들이 당신을 해하려고 합니다”라는 말에 각각 10.8%와 6.5%가 강한 동의를 표했다. 조현병 유병률이 성인 인구의 약 1%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범죄를 야기한 ‘피해망상’을 보이는 사람은 인구의 10%에 가깝기에 조현병이 원인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피의자는 과거 범죄전력도 있을 정도로 범죄 위험이 높았다. 1년 동안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했는데도 미래 범죄 위험을 통제하지 못한 경찰이 큰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책임지는 지역사회 내 정신건강증진 서비스 체계의 구조적 문제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첫째, 직업재활, 옹호활동, 일상기능 및 사회관계성 재활 등을 촉진하는 정신재활 서비스는 지역사회 내 정신질환자가 살기 위한 필수재이다. 피의자가 경험한 피해망상 역시 주요한 정신재활 서비스의 치료 대상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2000년대 후반에 검증된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은 약 60분 걸리는 집단심리치료를 8주간 제공했는데, 그 결과 참여자들의 망상 증상이 36.4%나 감소했다. 한국 역시 이런 효과적인 심리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정부 지원이 있다. 국민건강보험과 의료급여는 정신요법료를 통하여 정신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인들을 지원한다. 2017년에 국민건강보험은 5152억원에 이르는 요양급여를 정신요법료로 지출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정신의학전문의만이 주요 정신요법의 수가 청구를 가능하게 한 비합리적 규제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문제는 8주간 총 8시간에 달하는 시간적 투자를 하기에 정신의학전문의의 임금이 너무 높고, 정신의학전문의들이 받는 훈련은 심리치료보다는 약물을 사용한 접근에 집중하고 있다. 비정신의학전문의가 제공하는 심리치료를 건강보험과 의료급여가 지원하지 않은 결과, 정신질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신재활 서비스가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현실이 만들어졌다. 정신요법료의 수가체계를 개혁하여 효과성 없는 정신요법이 근거에 기반하여 제공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둘째, 정신보건정책을 수립하는 복지부의 정신건강정책과와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 출신 전문가 관료들로 구성돼야 한다.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는 의학·법학·사회복지·심리·정신재활 등 다학제 전문성이 요구된다. 정책 수립 과정을 주도하는 관료의 전문성을 다양화하여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 관련 정책을 개발 및 집행해야 하는 조직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신건강정책과는 행정고시출신 보다는 관련 분야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어느정도 정신건강 관련 정책개발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전문인력을 고용한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7월 양양에서 발행했던 사건을 보면 조현병이나 다른 정신질환 환자들을 향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일부 환자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은 한 개인을 “능력 없는 사람”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찍게 되는데 이는 엄청난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 2016년 정신질환 역학조사에 따르면 성인인구 4명 중 1명이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것으로 발견되었다. 이들 중 극소수 일부는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면서 그 분노를 해결하는 걸 어려워하고 있음을 최근 사건들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조현병이 범죄의 원인이니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분께 말씀드리고 싶다. 마음의 병은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겪는 우리의 고통이기에 더 이상 이들을 향한 손가락질을 그만두시라고.

오현성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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