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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6 16:27 수정 : 2019.05.06 19:06

<한겨레> 자료
2015년 12월 법무부 차관의 발표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사법시험 폐지를 4년간 유예하겠다는 것이었다. 양립 불가한 제도를 병행하여 종국엔 일본처럼 로스쿨 무용론까지 이끌어낼 심산이었다. ‘교육을 통한 양성’이라는 사법개혁 결과를 뒤엎으려는 불온한 시도였다.

그 조직적인 반동과 퇴행의 중심에 법무부 법조인력과가 있었다. 그리고 뒷배에는 (그 제도를 도입한 대통령에게 앙금이 남아 있는) 검찰이 있었다. 법조인력과장을 지낸 우병우가 민정수석으로, 법무부 장관을 지낸 황교안이 총리로 있는 터였다. 그들은 연수원 기수 중심의 구체제로 회귀하길 원했고 소수선발을 통한 지대추구를 원하는 대한변호사협회는 외곽의 든든한 우군이었다.

제1회 변호사시험(변시) 합격률 결정을 놓고 당시 박순철 법조인력과장(현 안산지청장)은 응시자가 아닌 ‘정원’ 대비 75% 합격이라는 기만적인 결정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학사 파행의 단초를 제공했다. 응시자가 늘어나도 신규 변호사 수는 매해 1600명 내외로 묶이게 된 것이다.(이번 8회 시험에서는 3330명이 응시해 1691명만이 합격했다) 수를 통제하니 ‘교육에 의한 양성’은 헛구호가 되었다. 급기야 제도 정상화를 기치로 로스쿨 학생 수천명이 법무부 청사 앞에 모여들었다. 학생 대표단과의 면담에서 당시 김아무개 법조인력과장(후에 가혹행위로 부하 검사를 자살에 이르게 하였다는 이유로 해임됐다)은 예비 법조인으로서의 소양 운운하며 집단행동을 멈추라 종용했다. 이듬해 사시 폐지 유예 발표에 학생들은 학사 일정 거부로 맞섰다. 검찰은 ‘검찰 실무’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에게 한 단계 낮은 학점을 부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제도 설계 당시 변호사시험은 ‘자격시험’으로서,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치면 졸업하는 해의 시험에서 대부분이 합격하도록 구상되었다. 그럼에도 법조인력과는 졸업 후 5년간의 합격자를 합하는 ‘누적합격률’과 같은 기이한 셈법과 각종 통계상 트릭을 개발함으로써 왜곡과 호도를 일삼고 있다. 그렇게 변호사 증원을 막고 친정으로 돌아가면 영전이 뒤따른다. 검사들에게 요직으로 통하는 이유다.

적정 변호사 수는 얼마이며 이는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그것을 (예비 전관변호사이기도 한) 검사들이 헤아리고 결정하는 것이 온당한가? 목하 대한민국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 외에 ‘변호사 수 통제권’도 독점하고 있는데 이는 월권이다.

의사가 장악한 보건복지부, 경찰이 장악한 행정안전부를 상상할 수 있는가? 검찰은 장차관을 비롯한 법무부 내 거의 모든 주요 부서를 차지함으로써 오랫동안 민주적 통제를 무력화해왔다. 로스쿨을 둘러싼 작금의 사태는 ‘법무부 탈검찰화’를 이루지 못한 데 그 근본 원인이 있다. 따라서 법조인력과에 현직 검사를 파견하는 관행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또한 사법시험하에서 합격자는 사법연수원에 입소함으로써 별정직 공무원이 되었기에 그 시험 관리 사무는 법조인력과 소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호사시험하에서는 시험에 합격하면 곧바로 자유직업인인 변호사가 될 뿐이므로 그 사무를 법조인력과가 맡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제 합격자 ‘선발’에 관한 권한은 주무부서인 교육부에 이양하여야 한다. 교육과 선발 업무가 이원화된 지금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예의 구태는 반복될 것이다.

한 법학전문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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