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5 16:51
수정 : 2019.04.1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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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기억문화제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에 참가자들이 촛불과 손팻말을 들고 세월호책임자 처벌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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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제 세월호 이야기는 좀 지겹지 않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에게 세월호 참사는 지난해에 일어난 것같이 생생한데,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은 듯하다. 2014년 4월16일, 우연히 들른 교무실에서 목포 앞바다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어진 뉴스에서 전원을 구조했다고 보도했고, 당시 목포의 한 중학교를 다니던 나는 뉴스를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목포한국병원을 지날 때 본 광경에 난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병원 앞은 취재진 소리, 울음소리, 헬리콥터 소리로 가득 차 있었고, 그날 응급실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응급차 침대에 누워 울던 아이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날, 172명의 피해자를 낸 날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안전할까? 나는 감히 아니라고 답하겠다.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 뒤 우리는 ‘기억하겠다’고 말했고,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달고, 4월16일만 되면 희생자 추모 글이 에스엔에스(SNS)에 올라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안전불감증은 없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변화한 것은 없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에선 매해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갈 때도 경찰관이 따라가는 등 재난에 매우 민감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허울 좋은 개살구였다.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세월호 사고가 자연재해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긴 인재라는 것이다. 한낱 욕망 때문에 생명이란 존엄을 잃었음에 사회 전체가 분노했다. 그 때문인지 세월호 참사 발생 초기 우리 사회는 안전에 대해 엄격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3년여 만에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고 등 인재에 따른 인명피해가 계속 발생했다. 안전불감증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잔존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으나, 나에게 있어서 이 말은 그들의 희생만을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에서 안전불감증을 벗겨내는 것을 뜻한다. 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는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지만,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행위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를 시발점으로 안전불감증을 없애 새로운 인명피해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발생으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광화문에선 그들의 분향소가 없어졌다. 우리는 5년 전에도 그들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갖 유언비어와 정치의 허물로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재앙’이라는 진실은 어느새 가려졌고, 정치싸움은 국민들의 슬픔을 희석했다. 많은 것이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한국의 안전불감증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안전불감증’을 없애는 것이, 안전에 대해 항상 곤두선 시선을 보내 다시는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5주기를 맞아,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성찰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최홍준
대학생·동국대 역사교육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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