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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1 18:21 수정 : 2019.04.10 16:42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

지난 29일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상가 건물 매입 사건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중 하나가 경제에서 정의나 윤리가 설 자리가 있는지, 있다면 어디인가 하는 문제다. 김 전 대변인의 거래에는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뚜렷한 불법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법의 테두리 내에서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거래를 하는 것은 비난하기 어렵다. 그것이 시장경제에서 말하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이며 그런 자유가 사회에도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경제에 정의나 윤리의 문제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켠에서 사람들은 경제에 윤리의 잣대를 계속 들이대려 한다.

가격이 오르기를 기대해 부동산 등 자산을 매입하는 소위 투기성 거래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학문적으로는 실제 사용 목적이 아니라 차익의 기대를 갖고 하는 거래를 투기라고 하고 중립적인 용어다. 일상에서 그것은 부정적 어감으로, 즉 윤리적 판단을 가미하여 사용하지만, 정말 고매한 인격을 지닌 일부를 제외하면 누구나 시간과 여건이 되면 그런 거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에게 그것은 매우 합리적인 대응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2년여 전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팔았다. 당시에 집값이 내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방향이 반대였을 뿐 투기적 거래이기는 매한가지다. 바로 이런 인식과 행위 사이의 간극에서 위선의 조짐이 보인다.

모든 합법적 자유거래가 허용되어야 한다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것이 정의로운가’를 묻는 것, 그것이 인간이고 사회이다. 자신의 행위에는 합리성의 기준으로 설명하지만, 사회로 나오면 윤리의 잣대도 같이 들이대고 싶은 것이다. 이 이중성을 그나마 크게 해소한 것이 막스 베버의 설명처럼 종교개혁이었고, 그것이 근대의 시작이었다. 당신이 얻은 이익이 정당한가에 답해야 하는 부담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한주 우리의 경험에서 보듯 그 부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경제든 ‘정의로운 경제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간다. 이 불편하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계속 던지고,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그 답을 찾아가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김 전 대변인의 사건을 계기로 시장경제에서 합법적이라고 해도 바람직하지 않은 경제적 행위가 있음을 우리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바람직하거나 정의롭지 않지만 합법적이기 때문에 용인되는 것뿐이다. 이처럼 현실과 정의의 균열이 두드러지면 사회는 더 정의로운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새로운 제도를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균열은 더 벌어지고 사회는 더욱 위선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제도와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지금의 경제가 정의로운가라는 이 불편한 질문을 끊임없이 안고 가야 한다.

그래서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거래에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는 이 불편한 질문을 안고 가며 정의로운 제도를 고민해야 하는 집단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의 설계자인 정치집단 전체가 남다른 윤리적 부담을 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들마저 불편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죽은 것이다. 차익을 기대한 부동산 거래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연봉 50억원이 합법이더라도 그것이 정당한 것인지를 우리는, 사회는 질문해야 한다.

핀란드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은 세계에서 소득도 가장 높고 행복도도 가장 높은 나라다. 이 나라를 방문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국민 모두가 모범생 같다는 것이다. 국민이 모범생이려면 그런 행동을 유도하는 모범적인 제도가 있어야 하고, 이런 제도는 앞의 불편한 질문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범적 정치인이 만드는 것이다. 제도의 설계자가 착한 것이 발전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이번 일을 지켜본 정치집단이 자기반성 대신 ‘너는 얼마나 깨끗한지 보자’ 하는 저열한 태도만 보인다면 국민 모두에게 슬픈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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