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외교관·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정치학) 외교 결례 논란으로 최근 언론이 시끄러웠다. 혹자는 “외교 참사”라고도 했다. 3월 초 문재인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방문 때 현지어로 “슬라맛 소레”(Selamat Sore)라고 인사를 했는데, 이것이 인도네시아어였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결례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현지에서 전혀 논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정부 관계자가 “셀라맛 소레는 말레이시아에서도 쓸 수 있다” 했다고 한다. 나는 외교관 시절 외국인 대상 연설에서 현지어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하곤 했다. 현지어를 쓰면 친근감은 높이지만 자칫 부정확한 발음을 하거나 엉뚱한 표현을 쓰면 객석에서 실소가 나오거나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현지어를 쓴다면 발음에 유의해서 딱 한마디만 하는 것이 좋다. 이때 그 한마디는 표현이 맥락에 맞고 발음이 비교적 정확해야 한다. 이런 자신이 없다면 아예 안하는 것이 낫다. 이 점에서 “슬라맛 소레”는 실수였다. 이 말은 말레이시아어가 아니다. 물론 쓸 수는 있다. 현지인들은 이 말을 안다.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는 같은 말레이어족에 속한다. 두 언어는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슬라맛 소레”가 인도네시아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구글에 “Selamat Sore”라고 입력만 해봐도 제일 위에 인도네시아어라고 뜬다. 말레이시아에서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말레이시아인 친구에게도 물어보았다. 그 말은 인도네시아어이고 말레이시아어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은 해프닝 정도로 이해한다고 했다. 말레이시아는 문 대통령을 환영한다. 그런 해프닝보다는 더 큰 그림, 즉 앞으로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어떤 협력을 할 것인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문제 삼지 않으니 결례가 아니라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친근함을 표현하려다 실수한 것이니 문제 삼지 않을 뿐이지 남의 나라에 와서 옆 나라 말로 인사한 것을 고마워할 것도 없다. 더욱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대개 이웃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여러 껄끄러운 문제도 안고 있다. 사실 이번 말실수로 드러난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외교 구호로 내세우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무역에서 기술, 문화, 인적 교류로 확대하여 주변 4강 수준으로 높여서 대중국 의존을 탈피하고 북핵 대응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 가면 대통령이 하는 현지어 한마디도 옆 나라 말과 구분조차 못한다. 대통령의 외교와 의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간단한 현지어조차 나라별로 분류를 못 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현실이다. 나는 캄보디아에서 열린 동아시아 포럼에 참석했을 때, 현지 중국 대사가 캄보디아어로 연설을 하고, 현지에 네번째 근무한다는 일본 외교관이 유창한 캄보디아어를 구사하는 것을 봤다. 현재 우리 외교의 충원과 인력 운용 방식으로는 꿈도 못 꿀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외교관들이 프로페셔널리즘이 모자라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다소 엉뚱한 진단을 내놓았다. 지금 제도하에서 외교관 중 누가 말레이 계열 언어 전문가가 되겠다고 할까? 외교부 장관이 말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신남방정책의 취지는 좋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정권들이 ‘동북아 다자안보’니 ‘동북아 중심국가’니 하면서 구호와 구상만 나열하고 장기적인 인프라 구축과 인재 양성은 외면했던 것을 보아왔다. 이번 말실수가 외교 참사라고 하면 지나치다. 그렇다고 다시 반복돼도 무방하다고는 할 수 없다. 동남아와 전략적 유대를 강화하고 싶다면 우선 그들의 말과 문화와 역사를 가려보는 인재부터 양성하라. 그런 장기적 구상의 부재야말로 이번 외교 결례 논란이 놓치고 있는 사태의 본질이다.
왜냐면 |
[왜냐면] ‘외교결례’ 논란이 놓치고 있는 것 / 장부승 |
전직 외교관·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정치학) 외교 결례 논란으로 최근 언론이 시끄러웠다. 혹자는 “외교 참사”라고도 했다. 3월 초 문재인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방문 때 현지어로 “슬라맛 소레”(Selamat Sore)라고 인사를 했는데, 이것이 인도네시아어였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결례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현지에서 전혀 논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정부 관계자가 “셀라맛 소레는 말레이시아에서도 쓸 수 있다” 했다고 한다. 나는 외교관 시절 외국인 대상 연설에서 현지어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하곤 했다. 현지어를 쓰면 친근감은 높이지만 자칫 부정확한 발음을 하거나 엉뚱한 표현을 쓰면 객석에서 실소가 나오거나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현지어를 쓴다면 발음에 유의해서 딱 한마디만 하는 것이 좋다. 이때 그 한마디는 표현이 맥락에 맞고 발음이 비교적 정확해야 한다. 이런 자신이 없다면 아예 안하는 것이 낫다. 이 점에서 “슬라맛 소레”는 실수였다. 이 말은 말레이시아어가 아니다. 물론 쓸 수는 있다. 현지인들은 이 말을 안다.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는 같은 말레이어족에 속한다. 두 언어는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슬라맛 소레”가 인도네시아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구글에 “Selamat Sore”라고 입력만 해봐도 제일 위에 인도네시아어라고 뜬다. 말레이시아에서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말레이시아인 친구에게도 물어보았다. 그 말은 인도네시아어이고 말레이시아어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은 해프닝 정도로 이해한다고 했다. 말레이시아는 문 대통령을 환영한다. 그런 해프닝보다는 더 큰 그림, 즉 앞으로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어떤 협력을 할 것인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문제 삼지 않으니 결례가 아니라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친근함을 표현하려다 실수한 것이니 문제 삼지 않을 뿐이지 남의 나라에 와서 옆 나라 말로 인사한 것을 고마워할 것도 없다. 더욱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대개 이웃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여러 껄끄러운 문제도 안고 있다. 사실 이번 말실수로 드러난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외교 구호로 내세우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무역에서 기술, 문화, 인적 교류로 확대하여 주변 4강 수준으로 높여서 대중국 의존을 탈피하고 북핵 대응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 가면 대통령이 하는 현지어 한마디도 옆 나라 말과 구분조차 못한다. 대통령의 외교와 의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간단한 현지어조차 나라별로 분류를 못 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현실이다. 나는 캄보디아에서 열린 동아시아 포럼에 참석했을 때, 현지 중국 대사가 캄보디아어로 연설을 하고, 현지에 네번째 근무한다는 일본 외교관이 유창한 캄보디아어를 구사하는 것을 봤다. 현재 우리 외교의 충원과 인력 운용 방식으로는 꿈도 못 꿀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외교관들이 프로페셔널리즘이 모자라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다소 엉뚱한 진단을 내놓았다. 지금 제도하에서 외교관 중 누가 말레이 계열 언어 전문가가 되겠다고 할까? 외교부 장관이 말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신남방정책의 취지는 좋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정권들이 ‘동북아 다자안보’니 ‘동북아 중심국가’니 하면서 구호와 구상만 나열하고 장기적인 인프라 구축과 인재 양성은 외면했던 것을 보아왔다. 이번 말실수가 외교 참사라고 하면 지나치다. 그렇다고 다시 반복돼도 무방하다고는 할 수 없다. 동남아와 전략적 유대를 강화하고 싶다면 우선 그들의 말과 문화와 역사를 가려보는 인재부터 양성하라. 그런 장기적 구상의 부재야말로 이번 외교 결례 논란이 놓치고 있는 사태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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