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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6 17:56 수정 : 2019.03.07 14:15

임도원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1월1일 새해를 맞아 영화 <인생 후르츠>를 보기로 했다. 약 300평에 이르는 땅에 고작 15평짜리 집을 짓고 나머지는 숲으로 만들어 산다는 노부부의 삶이 왠지 궁금해진 까닭이다. 그날 고양시 전체를 통틀어 <인생 후르츠> 상영은 딱 한 영화관에서 한 회밖에 없었는데, 기어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까지 찾아가서 영화를 봤다. “역시, 집이 좋아”라는 노부부의 단단한 안도감은 가슴을 촉촉이 적셨지만, 이 영화를 찾아보기가 이토록 힘들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남았다.

그로부터 한달여 뒤, 영화관 상영시간표는 근래 들어 가장 기괴한 모습으로 단장을 했다. 우리 집 앞 영화관의 상영시간표를 보고는 어이가 없어서 직접 세어보니 전체 상영 횟수 59회 중 30회를 <극한직업>에 할애하고 있었다. 이는 비단 우리 동네만의 문제는 아니라서 <극한직업>은 1월23일에 개봉한 뒤 보름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까지 전국적으로 상영 점유율 50%를 넘나들었다. 여기에 또 다른 대작 <뺑반>과 <드래곤길들이기 3> <극장판 헬로카봇>을 더하면 상영점유율이 93%로 치솟으니 기괴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수밖에.(2월4일 영화진흥위원회 자료 기준) 레바논 빈민가 소년이 부모님을 고소하는 내용을 통렬하게 담은 <가버나움>이나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의 특별한 동행을 유쾌하게 그려낸 <그린북> 등 다른 좋은 영화가 많이 있는데도 상황이 이러하니 답답하다.

<가버나움>과 같이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가 좋고 <극한직업> <뺑반>과 같은 상업영화가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 취향은 개개인의 자유이고 그 취향으로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많이 틀어주겠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 영화관들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이것은 거의 개개인의 취향을 하나로 통일시켜버리는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다양한 영화를 직접 찾아보고 감상하는 사람이면 모를까 그러지 않으면 그저 영화관에서 틀어주는 영화가 자신의 취향으로 굳어져버리는 것이다. 그 취향을 두고 온전히 자신의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양성이 멸종된 상영시간표는 다양성이 멸종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비슷한 집에 살면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이제는 거기에 비슷한 영화 취향까지 얹어주어 사람들을 모두 비슷비슷하게 만들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취향에 우열은 없지만, 다양한 취향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 간에는 분명 우열이 존재한다. 개개인의 다양성은 무시된 채 모두 같은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딱 군대 내무반에서의 경험으로 족하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배급사와 영화관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게 뭐라 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시장논리와 제도적 개입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이라 섣불리 의견을 내기도 조심스럽다. 그런데도 목소리를 내고 싶다. 좀 더 많은 사람이 <가버나움> 속 자인의 당돌한 외침에 뜨끔하고, <그린북> 속 토니와 돈의 특별한 우정에 웃음 짓고, <인생 후르츠> 속 츠바타 부부의 잔잔한 동행에 감동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니, 최소한 그 기회는 보장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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