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20 19:04
수정 : 2019.02.2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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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6일 북한 개성시 판문역에서 열린 남북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 공동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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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과학기술을 통한 교류협력’과 같은 제안들이 조심씩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수학, 과학, 아이티(IT) 분야의 올림피아드에서 남북 단일팀 논의도 호응이 커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에 스마트시티를 위한 테스트베드를 설치하자”는 민경태의 주장 또한 참신하다.(<한겨레> 2월8일치 기고
‘이밥에 고깃국’을 넘어 ‘스마트시티’로, 민경태 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 하지만 이 주장은 남북협력사업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을 몇가지 놓치고 있다.
우선, 북한에 대한 몰이해가 가장 큰 문제다. 북한 지도부가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해서 검증되지 않은 기술들을 사회 전체에 펼쳐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중앙집중화가 잘되어 있고 최고지도자의 권위가 높다고 해서 현장의 의견이나 실상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처럼 금전적 이익을 중심으로 첨예한 이해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고 그들 사이에 의견 대립도 심하게 일어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무시하고 “일사불란하게 정책을 집행”할 수 있다는 선입관에 기대어, 완성되지 않은 기술들이 적용된 “이상적인 도시 모델”을 북한 지역에 구현하기 쉽다고 민경태는 주장한다. 북한은 백지 상태가 아니다.
둘째, 이런 무리한 요구에 깔려 있는 과도한 과학주의도 문제이다. 민경태의 글에는 첨단과학기술이라면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시선이 있다. 자율주행차가 멋있어 보여서 빨리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여전히 오작동과 기술의 미숙함으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도 서둘러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하다. 아무리 선진적인 기술이라 하더라도 안전이 담보되지 못한 것을 우리 사회에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다. 기술의 발달을 우리 사회가 모두 수용하지 않는 것은 첨단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술이 가져올 위험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안전불감증을 과도한 과학주의로 가리고 있는 듯하다.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삼자”는 주장은 이러한 두 문제가 결합된, 오류가 중첩된 주장이다. 테스트베드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시험'하는 곳을 뜻한다. 모르모트와 유사한 의미이다. 검증이 끝나지 않은 약물을 사람에게 곧바로 투입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다른 사회에 곧바로 이식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만일 북한의 어떤 학자가 “남한을 북한 주체과학기술의 테스트베드로 삼자”고 주장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역지사지가 안 된 주장이다.
6·15부터 이어지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호혜평등과 상호존중이다. 북한의 경제 수준이 우리보다 못하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기부하는 형태가 되어서도 안 되고, 경제 자립도가 낮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상대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서울과 평양 사이에는 남북이 힘을 합쳐 평화를 만들어내는,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이미 자리잡고 있다. 개성공단이 1단계 사업에서 정체되어 임가공을 비롯한 노동집약산업만 들어선 형태가 되었지만 원래 합의에는 2, 3단계에서 첨단산업 관련 기업들을 입주시키는 계획이 있었다. 일방적이고 위험천만한 스마트시티 건설 주장보다 남북이 합의한 개성공단의 첨단산업단지화를 실현하는 것이 더욱 현실성 있고 원칙에 충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성 밖이 아니라 개성공단 안에서,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실험실 수준이 아니라 첨단 기술을 활용한 산업단지를 만드는 것, 이것이 오히려 남북교류협력의 원칙을 지키면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면 남북이 함께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남북스타트업 지원센터’와 같은 것을 개성공단에 설치하자는 의견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함께 토론해볼 것을 추천한다.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과학기술로 북한읽기 1>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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