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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1 18:23 수정 : 2019.02.11 19:19

서울에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후배한테 연락이 왔다. 여의도가 들썩거리고 있는데 남쪽은 얼마나 분통 터지느냐고. 화가 나도 흥분하지 말고 지혜롭게 대응해서, 5·18 진상규명을 완벽히 하는 데 집중해달라는 말에 울컥했다.

일제 강점기 36년보다 긴 39년이 지났지만, 천형의 땅 전라도에서 발발한 것이 잘못인지, 분단 조국의 역사적 숙명인지,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수그러들지 않고 노골화되고 있다. 이미 1995년 김영삼 문민정부 때 5·18특별법이 통과되어 국가기념일로 제정됐지만,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의 후예들과 보수집단은 집요하게 5·18의 정통성을 인정하기는커녕 나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광주시민들과 민주화운동 세력은 살아남았다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민주화운동을 했으며 그러다 보니 연행과 수배와 구속을 감내했던 것인데, 그게 폭도라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39년이란 긴 세월을 눈물과 한숨으로 버티면서 행여 자식이 돌아올까봐 지금도 이사를 가지 않고 대문을 열어놓고 잠잔다는 5월 어머니의 한 맺힌 절규…. 5·18 관련자들(부상자들)의 자살률은 일반 국민보다 훨씬 높다는 통계가 있다. 당시에 중책을 맡았던 대부분의 관련자도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한 채 약과 의지로 버티고 있는 참담한 운명을 언제나 보듬어줄까?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았으면 한다.

1919년 2월8일은 일본 유학 중인 학생들이 2·8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한 날이다. 뜻깊은 100년이 지난 2019년 2월8일, 대한민국의 심장 국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독립운동 후손들에 대한 예우에 관한 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나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토론회가 열린 게 아니었다. 자유한국당의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주최한 ‘5·18 진상규명 공청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지만원은 또다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다. 두 의원과 김순례 원내대변인은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폄훼하고, “5·18 유공자는 괴물집단”이라는 망언과 “5·18 문제에 있어 우파가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선동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나경원 원내대표는 “개별의 생각일 뿐 당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나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대국민 사과는커녕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광주학살의 주범으로 확정된 전두환마저도 5·18과 북한군은 무관하다고 했는데 지만원과 자유한국당의 일부는 5·18을 폭도나 북한군 개입설로 매도하며 전두환을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철이 가까이 오면 항상 지역감정과 사상이란 무기(?)를 꺼내드는 보수 세력의 전략이자, 오래된 악행이 아닐 수 없다.

고향 가는 길목 영산강 상류에 지석천이 있다. 어찌할까. 고요한 실개천이 4대강 사업의 후유증으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염시키지 않고 자연스레 흐르도록 했으면 아름다운 봄을 피울 수 있었건만,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빚은 안타까운 참사다. 어디 물만의 교훈이겠는가. 산골짜기의 물이 흘러 낭만의 바다를 이루듯, 우리의 역사의 강물도 힘차게 흘러 후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래서 봄의 물소리가 아련한 2월에 외친다. 누가 감히 역사의 강물을 막으려 하는가?

이지현 5·18부상자동지회 초대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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