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2.07 18:47 수정 : 2019.02.07 22:33

입시는 어쩔 수 없지만 아이들 인성과 자아실현에도 신경 쓰며 사랑해줘야 한다는 진부한 메시지들은 입시 문제에 이 사회와 기성세대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역설적으로 폭로한다. 교육 관련 제도를 이리저리 고친다고 해결되는 성질의 문제가 아님이 점점 드러났다.

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드라마 <스카이 캐슬> 마지막회는 ‘최고의 결말’이었다. 눈을 치켜뜨는 시청자가 많을 것 같다. 등장인물이 도덕책을 읊으며 일제히 개과천선하는, 옛날 공익광고협의회 광고만도 못한 최종회가 최고라니…. 심지어 ‘마지막회를 재촬영하게 해달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하지 않았던가. 물론 미학적 측면에서 마지막회는 최악이다. 이보다 ‘구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재앙이었다. 이미 여러 비평이 나와 있으니 반복할 이유는 없겠다.

더 세련된 결말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지 못한 데엔 분명 작가를 포함한 제작진의 인식의 한계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현실의 문제와 밀착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드라마를 논하면서 단지 ‘작가의 마인드가 원래 구렸다’ 운운하는 데 그치는 건 안이하다. 설령 ‘래디컬’하고 ‘아방가르드’하며 ‘쿨’한 최종회가 만들어졌다고 치자. 그리하여 1회부터 20회까지, 한국 드라마 사상 유례가 드문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치자. 입시지옥 현실은 그대로인데 입시 드라마만 매끈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그것이야말로 모종의 은폐이자 기만이 아닐까?

약삭빠른 작가라면 참담한 현실을 무심히 보여준 다음 스윽 뒤로 빠졌을 것이다. 또는 끝 간 데 없는 파국과 절망 속에 희미한, 보일까 말까 한 희망의 그림자만 남겨두는 식으로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많은 ‘비평가’와 ‘드라마 덕후’에게 더 큰 찬사를 받았을 수 있다. 작가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양심적 시민으로서 분노하고 슬퍼했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최선의 답’을 제시하려 한다. 극중 진진희-우양우 부부의 대화가 그 백미다.

“하긴 누가 그러더라. 아무리 공부 스트레스가 극심해도 부모에게 사랑받는 아이들은 아주 짱짱하게 잘 버틴다고.” “에휴, 이 빌어먹을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을 우리가 바꿀 순 없잖아? 이 살벌한 시스템 속에서 울 아들이 굳건히 버티게 사랑 듬뿍듬뿍, 아주 오지게 쏟아주는 게 우리 몫이야.”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왜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는지, 왜 여기가 각자도생의 헬조선이 되었는지가 저 선량한 대화에 모두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한계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한계가 저 대화에 농축되어 있다. 단언컨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고 대한민국 입시지옥은 부모의 사랑으로 포장되어 있다. 체제에 체념한 도덕적 개인들은 필연적으로 지옥의 퍼즐조각이 된다.

대중문화 작품이 창작자의 의도를 벗어나 풍부한 의미의 지층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결말이 열려 있거나 해석의 공백이 커서 수용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경우, 혹은 메시지가 지나치게 상투적이거나 규범적이어서 되레 풍자와 아이러니의 숙주가 되는 경우다. <스카이 캐슬>은 명백히 후자다. 그래서 얄궂게도 ‘최고의 결말’이 나올 수 있었다. 입시는 어쩔 수 없지만 아이들 인성과 자아실현에도 신경 쓰며 사랑해줘야 한다는 진부한 메시지들은 입시 문제에 이 사회와 기성세대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역설적으로 폭로한다.

지옥을 해체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고 모두 실패했다. 대입제도를 아무리 바꿔댄들 해결되지 않았다. 이건 교육 관련 제도를 이리저리 고친다고 해결되는 성질의 문제가 아님이 점점 드러났다. 혹자는 ‘시험’을 악의 근원으로 꼽지만, 학종 논란에서 보듯 시험을 없애거나 줄이면 시스템에 대한 불신만 커진다. 시험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공정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일 따름이다. 그럼 애당초 왜 사람들이 ‘공정성’에 그리 집착하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보상이 지나치게 크거나 혹은 페널티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극중 차민혁 교수가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라”고 그렇게 강조한 이유는, 한국 사회가 피라미드 꼭대기에 선 자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특권과 면책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과잉보상과 과잉벌칙으로 양극화된 자원 분배 시스템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다. 즉, ‘승자독식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입시지옥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스카이 캐슬> 신드롬의 의미가 더욱 또렷해졌다.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고, 현실을 바꿀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

사회비평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