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서 본 황금돼지해 일출. <연합뉴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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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에서 본 황금돼지해 일출. <연합뉴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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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아침에 도로 위에서 지독한 냄새가 알싸하게 풍겨온다. 바로 돼지를 싣고 가는 2층짜리 돼지 운반차이다. 대부분의 가축 돼지는 일생에 한번, 생후 5개월째 첫 여행을 하고 그리고 그날이 마지막 여행이 된다. 더러운 돼지차라고 인상을 찡그려도 그들을 먹을 때는 모두 행복해할 것이다. 도축장에서 돼지들은 대개 감전으로 1차 기절을 당한다. 얼마나 강도가 세면 기절까지 할까. 안락사, 그들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라도 한방에 고통을 줄여주었으니 그것을 안락한 도살이라고 통상 부른다. 죽음은 그다음 심장을 찔러 온몸의 피가 빠져야 비로소 천천히 찾아온다. 그동안 그들은 거꾸로 매달려서 꿈틀꿈틀 최소한의 반항을 해댄다. 그러다 조용해진다. 마침내 죽음을 맞은 것이다. 호랑이, 표범들을 다 사냥하여 멸종시키고 나니까 우리 산은 멧돼지가 우점종이 되었다. 야생에선, 한 영역에 일정 수 이상이 살지 못하고 새끼들도 때 되면 독립을 해야 한다. 적들에게 쫓기고, 어미에게 내쳐진 짐승들은 일순 당황할 수밖에 없고 처음엔 어딘지 분간도 못 하고 헤매 다닐 수밖에 없다. 산과 산 사이에는 거의 도시나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멧돼지는 그 도심을 건너야 비로소 새로운 터전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에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혼비백산 난리가 난다. 그들에게 이 멧돼지는 침략자일 뿐이다. 그들보다 훨씬 더 두려워진 멧돼지는 방어본능에 의해 최대한 흥분하고 날뛰며 달아날 곳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질주한다. 사람들은 그걸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동물은 총을 당할 수 없다. 멧돼지는 차가운 도시에서 처참하게 총을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 도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차가운 일상을 되찾는다. 식당 간판에는 웃음기 머금은 돼지가 춤을 춘다. 돼지 전문 식당의 간판만 보면 마치 그 돼지가 주인 같다. 그 옆 식당에선 소나 오리가 ‘엄지 척’을 하며 신나서 또 웃고 있다. 소고깃집, 오리고깃집이다. 무간지옥이 따로 없다. 자기 살이 씹히는데도 그들은 웃어야 한다. 감전되어 기절할 때의 고통으로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져 웃는 표정이 된 돼지머리라야 복을 불러온다고 해서 가장 비싸게 팔린다. 그들은 고대로부터 이렇게 가장 흔한 희생양이 되어왔다. <동물의 왕국>에선 남아메리카 페커리나 아프리카 혹멧돼지가 빠른 속도로 달아난다. 그 뒤를 재규어, 퓨마, 사자, 치타가 쫓는다. 마침내 그들이 따라잡히고 목을 물려 최후를 맞는다. 카메라는 계속 사자나 치타만 쫓는다. 돼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청자들도 치타의 멋진 사냥 솜씨에 찬사를 보낸다. 내레이션은 “오늘도 치타 가족은 힘겨운 하루를 보냈습니다”로 마친다. 사람들은 동물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매긴다. 돼지라고 놀림받는 건 동물이 들어가는 욕 중에 가장 상위급 욕이다. 세상에는 돼지보다 뚱뚱한 동물도 무척 많다. 하마, 코끼리, 소, 곰 모두 돼지보다 뚱뚱한데도 유독 돼지만 그렇게 푸대접을 받는다. 아마도 체구에 견줘 다리가 짧고 코가 납작해서 그런 것 같다. 멧돼지는 엄청난 속도로 급경사의 산을 내달릴 수 있는데 그래도 쉽게 넘어지지 않는 건 무게중심이 몸 아래에 있어서다. 코는 매우 단단해서 땅을 헤집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야생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동물이 바로 멧돼지다. 자연이 선택한 그들의 이상적인 몸집은 허약한 인간들의 질투로 인해 모독으로 뒤바뀌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선 돼지가 대장이다. 돼지는 다른 동물들을 선동하고 평생 비겁한 노예로 살아선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왜 하필 돼지가 대장이 되었을까? 베이컨, 삼겹살 등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식품이 돼지고기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희생을 강요당하면서도 구정물로 키워지고 짬밥이나 먹지만 그래도 가장 인간과 닮은 동물이 돼지여서이다. 올해가 황금돼지해라면서 인간들이 만든 빛나는 돼지 이미지가 넘쳐나는 사이,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는 돼지들의 형형한 눈빛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그들의 일상적인 홀로코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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