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1.28 18:15 수정 : 2019.01.29 13:40

신영전
한양의대 예방의학 교수

대학생 ㄱ씨는 미용실에서 공짜로 해준다는 유전자 검사를 무심코 받았는데, 자신에게 유방암 유전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결과를 남자친구에게 고백하고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포기했다. 임신부 ㄴ씨는 현행법 단속의 느슨한 틈을 이용하여 태아의 유전자 검사 소견을 받아보았는데, 태아가 이상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통보를 받고는 인공유산을 생각 중이다. ㄷ씨는 유전자를 이유로 입사 시험에서 탈락했고, 민간보험 가입을 거절당했다. 이런 미래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일이 조만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 ㄷ씨 사건은 실제로 2003년 가까운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지난 17일 산업융합촉진법(이하 샌드박스법)이 시행됐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규제프리존법’이다. 이제 안전성 평가가 충분하지 않은 의약품이나 의료검사도 먼저 허용하고 나중에 평가할 수 있게 됐다.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정부의 결정에 따라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검사’(이하 DTC·디티시) 시장도 허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일부 경제지는 ‘침으로 암 유발 유전자 검사 ‘규제샌드박스’ 첫 해제 대상’(<서울경제> 1월4일치) 등 설익은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디티시 검사 항목의 확대는 앞에서 제시한 사례뿐만 아니라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들이 내놓는 설명은 잘못되었거나, 적어도 일반인들의 오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암 유전자가 있다고 해도 반드시 암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영리검사기관들이 자주 인용하는 배우 앤절리나 졸리에게 있었던 ‘유방암 유전자’(BRCA1)를 가진 유방암 환자는 약 5%밖에 되지 않는다. 조현병 유전자도 유전변이는 100개가 넘지만 유병률은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하다. ‘우울증 유전자’라 불리는 5-HTTLPR는 우울증과는 단지 약한 연관성이 있을 뿐이고 더욱이 이 유전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더욱이 설령 ‘이상 유전자’가 발견된다고 해도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일반 국민이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통보받으면 평생을 얼마나 큰 공포 속에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라.

상황이 이렇지만, 유전자 검사의 전면 확대와 영리화가 결합하여 만들어낼 심각한 폐해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거의 대책이 없다. 기존 법령들과 인증제 실시 등이 이 검사의 오용을 막도록 되어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이 샌드박스법은 그러한 기존 법령들을 무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유전자 검사가 미용실이나 민간보험회사에 의해 판매되고 있지만, 이러한 행위가 적절한 것인지 모니터링조차 못하고 있다. 미국도 유전자 검사 기관이 행한 유전자 검사가 정확한지를 확인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유전자 검사의 활성화는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크게 늘릴 가능성이 분명하고, 이는 의료보장률 70%를 달성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과도 배치된다. 무엇보다 이는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높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디티시 검사 항목 확대와 같이 국민 개개인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작 국민이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이 법이 야기할 문제의 심각성이 이해가 안 가는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가 있다면 이런 상상을 해보시라. (정치인 혹은 고위 관료인) 당신의 칫솔을 훔친 ㄹ씨는 칫솔에 묻어 있는 유전자를 분석하여 당신이 치매 유전자를 가졌다고 발표한다. 현행법상 ㄹ씨의 행위는 불법이므로 그는 감옥에 가겠지만, 당신은 고위직 승진심사에 탈락하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지고 만다. 치매 유전자를 가진 대통령을 뽑을 수는 없지 않냐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들의 칫솔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시라.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